정부가 2009년 신종플루 사태 이후 감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컨트롤타워를 만들었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회의조차 제대로 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한 공공의료 체계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15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등 8개 부처는 2010년 12월 신종·변종 감염병에 선제 대응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범부처 감염병 대응 연구개발 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를 발족했다.
각 부처 국장급이 참석하는 위원회는 연간 2회 정기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초기에만 반짝 관심을 끌었을 뿐 지난해에는 부처들의 무관심으로 서면회의로 대체됐다. 감염병 관련 포럼과 심포지엄도 2013년을 마지막으로 더는 열리지 않고 있다.
위원회는 메르스 사태가 터지기 한 달여 전인 올해 4월 초 ‘백신·예방 질환’과 ‘감염병 재난·관리’ 담당분과를 만드는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열었지만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등 4개 부처만 참석했다.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재부, 정부 R&D 예산 배분권을 갖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는 불참한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당시 관련 안건은 통과됐지만 힘 있는 부처들이 참석하지 않아 예산이 제대로 뒷받침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해당 위원회에 ‘전임 정권의 프로젝트’란 딱지까지 붙은 탓에 사실상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의 소규모 기구로 쪼그라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감염병 R&D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관련 투자도 제자리걸음이다. 올해 편성된 복지부의 감염병 관련 예산은 23개 사업, 총 4024억 원이지만 이 중 순수한 감염병 R&D 예산(감염병 위기대응 기술개발)은 218억 원(5.4%)에 그쳤다. 그나마 218억 원 중 신종플루 관련 예산이 88억 원으로 40%를 차지하며 메르스와 같은 원인불명 감염병에 대한 예산은 전무한 상황이다. 복지부는 메르스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내년 신규 예산에 55억 원을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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