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거부권 시한폭탄’… 속내 복잡한 김무성 “할말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03시 00분


[국회법 갈등]강경 모드 청와대
靑 “딱 한 글자 고쳐 달라질것 없어” 입법부와 정면대결로 치달아
비박 지도부 불신임 성격 짙어… 개혁-국정동력 확보 차질 우려도

심각한 정의화-김무성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도시 부산, 무엇부터 풀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한 정의화 국회의장(왼쪽)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전날 국회는 정 의장의 중재로 국회법 개정안 자구를 일부 수정해 정부로 송부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심각한 정의화-김무성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도시 부산, 무엇부터 풀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한 정의화 국회의장(왼쪽)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전날 국회는 정 의장의 중재로 국회법 개정안 자구를 일부 수정해 정부로 송부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청와대와 국회가 ‘정면대결’로 치닫고 있다. 국회가 정부 시행령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고 나서면서다. 야당과의 전면전 선포이자 여당 내 비박(비박근혜)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의 성격이 짙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기자들을 만나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딱 한 글자를 고쳤던데 그렇다고 우리 입장이 달라질 게 없다”며 국회법 개정안 수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여야는 전날 정부 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한다’는 조항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수위를 낮춘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해 법안을 정부로 이송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의 기류는 강경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달라진 문구로 강제성이 없다면 현행 국회법 98조 2항과 다를 게 없고, 만약 문구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강제성이 있다면 위헌”이라며 “문구 변경은 거부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제시한 핵심 논리는 ‘법의 안정성’이다. 야당이 정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했지만 이후 법 개정 취지를 들어 정부의 시행령 개정을 번번이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면서 아무 관련이 없는 국회법 개정안을 포함시킨 야당의 ‘연계 전략’에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법의 안정성’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적 안정성’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순간 야당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당청 관계도 급속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의 국회법 개정 요구를 수용하고 중재안에도 합의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거취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여당 내부가 친박(친박근혜) 대 비박 간 극심한 갈등 국면에 휩싸일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입법부 수장의 중재 노력까지 무시했다는 비판 여론도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연일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일자리 창출 법안의 통과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입법부와 전쟁을 치르면서 과연 개혁과 경제 활성화의 동력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에 이어 입법부로 전선(戰線)을 넓힌 가운데 국민 여론을 얼마나 끌어안을 수 있느냐가 거부권 행사의 마지막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법 못찾는 여당 ▼

청와대-유승민 접점 없이 팽팽… 중간에 낀 김무성 중재 쉽지않아
“당청 한몸 기조 깨기 힘들것” 국회법 자동폐기 수순 관측도

박근혜 대통령이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당청 관계가 다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김 대표가 나서서 청와대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끄는 당 원내지도부 관계를 중재해 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의견 차이가 크다 보니 김 대표로서도 절충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 관계자는 “청와대와 원내지도부 중 한쪽이 다소 물러서야 하는데 지금은 둘 다 팽팽히 맞서고 있다”며 “김 대표의 중재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털어놨다. 김 대표도 이날 “할 말 없다”며 발언을 자제했다.

앞으로 15일 이내에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당청, 그리고 당내 계파 갈등도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과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 원내대표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민병욱 대변인의 발언에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원내지도부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의원총회를 열어 당내 의견을 수렴해 재의결 여부를 결정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친박근혜)계 사이에선 유 원내대표의 책임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유 원내대표 취임 이후 집권여당이 청와대와 불협화음을 내는 모습만 보여 왔다. 원내지도부 리더십에 분명 문제가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아직 박 대통령의 임기가 2년 6개월 이상 남은 상황에서 새누리당으로서는 “당청은 한 몸”이라는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통을 겪겠지만 결국 재의를 위한 표결이 아니라 자동폐기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와의 물밑 접촉에 나서 중재안의 취지와 국회 상황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개정안 재의결 시 의결 정족수(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를 맞춰 주기로 유 원내대표가 약속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논란이 됐다. 새누리당 민현주 원내대변인은 즉각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 원내대표도 “유 원내대표에게 정치적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의 표현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강경석 coolup@donga.com·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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