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놓고 집권세력 내 갈등으로 정국이 마비될 조짐이다. 유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혼란에 대해 “우리 박근혜 대통령께도 진심으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며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한다”고 거듭 사죄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의 적잖은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은 집단 당무 거부나 지도부 사퇴, 조기 전당대회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여당이 국회법 파문 수습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진노에 편승해 ‘유승민 찍어내기’ 내전에 돌입한 모습에 국민은 배신감을 느낀다.
원내 사령탑인 유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정부의 복지-재정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당정 조율 없이 법인세 인상, 사드 공론화 등 개인 의견을 표명해 혼선을 빚은 것은 사실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 반대를 무릅쓰고 야당의 국회법 개정안 연계 주장을 받아들여 통과시킨 것도 국정의 한 축을 책임진 여당 원내대표로서 잘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회법 혼선이 유 원내대표만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발목 잡혀 야당에 끌려다니는 그를 지원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대(對)국민 기자회견이나 야당 지도부 설득을 한 적도 없다. 그제 의원총회에서 다수 의원이 유 원내대표 사퇴론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권 핵심부가 박 대통령의 ‘원격 조종’에 따라 유 원내대표를 찍어내려는 데 새누리당 다수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더구나 대통령의 개인감정 때문에 여당 원내대표를 갈아치우는 것이 온당한지도 의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박(비박근혜) 지도부 무력화에 나선 듯한 친박의 권력투쟁 양상에 국민이 박수를 칠지도 의심스럽다.
국회에 3년째 잡혀 있는 경제활성화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서도 집권당이 친박-비박 갈등을 벌여선 곤란하다. 그럴 바엔 원내대표의 진퇴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의원총회를 다시 열어 논란을 매듭짓는 게 낫다. 사퇴로 의견이 모아지면 유 원내대표는 물러나면 된다. 유임 결정이 날 경우,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는 조속한 회동으로 당청(黨靑) 협력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국정 운영과 국회 정상화의 책임은 정부 여당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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