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극심한 내홍 속으로 빨려들고 있지만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대신 친박(친박근혜)계의 대리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면 자칫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한 명을 찍어내기 위해 ‘권력투쟁’을 벌였다는 비판 여론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쏟아낸 ‘6·25 말 폭탄’의 핵심 표적은 유 원내대표라는 데 이견이 없다. 여기서부터 의문이 커진다. 유 원내대표의 퇴진은 당장 여당 내 갈등과 여야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져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실제 국회는 올스톱됐고, 경제 활성화 법안의 처리는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과연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무엇을 위해 여권 분열을 감수한 ‘초강수 카드’를 꺼냈을까. 직접적으로는 유 원내대표의 협상 자세를 꼽을 수 있다. 야당의 ‘연계 전략’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면서 ‘혹 떼려다 혹만 붙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중점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려다가 오히려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유 원내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야당의 ‘법인세 인상’ 요구에 대해서도 유 원내대표는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해왔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을 미리 막기 위해 ‘유승민 사퇴 카드’를 선제적으로 꺼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유 원내대표에 대한 보이콧이자 박 대통령의 정책기조를 흔들려는 비박(비박근혜)계 전체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여야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는 야당 뿐 아니라 여당의 눈치까지 살펴야 했다”며 “당청 사이에 ‘진실공방’이 되풀이되면서 정부의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청와대와 친박계의 영향력을 확대해 조기 레임덕을 막으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내년 총선까지 비박계 지도부는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 없이 선거를 치르는게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김무성 대표 등 미래권력을 중심으로 여권이 급속히 재편될 수 있다. 자칫 총선 이후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은 여권 내부를 조기에 단속해야 할 필요성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비박 지도부’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여권의 원심력을 막으려 했다는 얘기다. 김 대표가 여권의 차기 주자로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통해 김 대표에게도 경고장을 보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자기 정치’는 곧 ‘배신의 정치’라며 비판한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결국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보복 정치’에 나섰다는 비판 여론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다. 박 대통령이 29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여권 내홍과 관련해 또 다시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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