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지휘관’ 故정병칠 사령관을 아십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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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13주년]
‘NLL 사수’ 지휘하고도 패전의 굴레속 세상 떠나… 또 한명의 영웅 재조명을

2002년 당시의 정병칠 사령관 2002년 7월 4일 당시 한나라당 서해교전조사특위 소속 의원들을 제2함대사령부 브리핑실로 안내하던 정병칠 제2함대사령관(오른쪽). 제2연평해전 직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패장’으로 몰렸던 정 사령관은 전역 후에도 마음의 멍에를 벗지 못했다.동아일보DB
2002년 당시의 정병칠 사령관 2002년 7월 4일 당시 한나라당 서해교전조사특위 소속 의원들을 제2함대사령부 브리핑실로 안내하던 정병칠 제2함대사령관(오른쪽). 제2연평해전 직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패장’으로 몰렸던 정 사령관은 전역 후에도 마음의 멍에를 벗지 못했다.동아일보DB
29일 13주년을 맞은 제2연평해전은 최근에야 우리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켜낸 고귀한 승전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윤영하 해군 소령 등 전사자 6명도 국가적 영웅으로 위상을 찾아가고 있다. 영화 ‘연평해전’을 통해 그들이 뿌린 피의 숭고한 의미를 절감하는 국민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교전을 지휘한 고 정병칠 전 해군 2함대사령관(당시 50세·해사 28기)은 여전히 ‘비운의 지휘관’으로 남아 있다. 정 전 사령관은 ‘적이 쏘기 전에 쏘지 말라’는 상부의 안이한 대응 지침으로 초래된 불리한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교전을 지휘했다.

당시 아군의 손발을 묶은 상부 지침 탓에 그와 부하 장병들은 북한 경비정의 기습을 받고서야 죽을힘을 다해 싸워 NLL을 사수했다. 당시 북측 경비정에선 사망 13명, 부상 25명 등 총 38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아군보다 더 큰 피해를 본 것으로 군 당국은 집계했다.

그럼에도 그에겐 ‘패장’이라는 싸늘한 시선이 군 안팎에서 쏟아졌다. 그는 한때 보직해임까지 당하는 불이익을 겪었다. 해군 관계자는 “제2연평해전을 도발한 북한이나 안이했던 정부에 쏟아질 국민적 비난을 일선 부대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남북 화해 무드와 무조건적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적 질타를 피하고 싶어 했다. 군 수뇌부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자 교전의 책임과 비난의 화살이 정 전 사령관에게 집중됐다.

교전 이틀 뒤 치러진 전사 장병 영결식에 군 통수권자는 물론이고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등 국가지도자와 군 수뇌부가 의전상의 이유를 들어 모두 불참했다. 정 전 사령관의 장남인 치현 씨(38)는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머리가 하얗게 세고 목이 쉴 대로 쉰 채 두 달 넘게 사태를 수습하면서도 죄인 취급을 받고 갖은 불이익을 겪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했다. 정 전 사령관은 합참 전략기획부장과 해군 군수사령관을 거쳤지만 중장 진급을 못하고 2007년 4월 전역했다.

군문을 나와서도 그는 마음의 짐을 벗지 못했다. 그는 사랑하는 부하들을 잃은 아픔과 회한을 토로하며 가슴앓이를 했다고 한다. 제1연평해전을 지휘한 박정성 전 2함대사령관(해사 25기) 등 지인들에게 “부하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다” “자꾸만 그들이 눈에 밟힌다”며 비명에 간 부하들을 그리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군 관계자는 “정 전 사령관은 매년 6월 TV나 신문에서 제2연평해전 관련 행사나 전사자 유족들에 대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유달리 가슴 아파했다”고 말했다.

주위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부하를 잃은 죄책감에 마음고생을 하던 그는 2009년 5월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한 달여간 투병한 끝에 숨을 거뒀다. 다른 해군 관계자는 “자신보다 부하를 더 아꼈던 정 전 사령관은 제2연평해전의 마지막 전사자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제2연평해전이 승전으로 재평가받고 있는 만큼 정 전 사령관의 공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군 관계자는 “정 전 사령관처럼 위기 시 소신대로 부대를 이끈 지휘관이 정치적 이유로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는 사태가 재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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