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배신자 만들어내는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꼭 3년 전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할 때도 주군을 모신다는 생각은 없었다. 박 전 대표와 내가 상하, 주종,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라고 생각 안 한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했다.”

동지관계 아닌 아씨와 머슴

그래서였을까.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박 비대위원장이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자 유승민은 “철학이 없다”며 비판했다. “박 위원장이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했다. 올 4월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한 것은 박 대통령에게는 “더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제일 참지 못하는 게 ‘하극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초선으로 당 부총재를 하던 무렵 선수(選數)와 나이가 많은 의원들이 자신을 비판하면 “하극상 아니냐”고 정색을 하더라는 얘기다. 정당에서 흔히 쓰는 ‘동지’라는 개념은 박 대통령의 사전에 없는 것 같다. 박 대통령 덕에 금배지를 달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실은 ‘자기정치’를 하려 한다는 강한 의구심은 유승민을 콕 찍어가며 여의도 정치권에 퍼부은 ‘6·25 폭탄발언’에서 여과 없이 폭발했다.

“저도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 남아 있다.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주셔야 한다.”

김무성 대표도 지난해 8월 관훈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동지적 관계”라고 했다. 박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한 친박(친박근혜) 인사는 박 대통령과 잘 지내는 법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아씨와 머슴이라 생각하면 서로 마음이 편하다. 김 대표가 (좋은 사이가) 안 된 것은 ‘아씨와 장수’ ‘공주와 왕자’로 가려고 하니까 그런 거다.”

유승민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처리 시한과 계속 조건을 덧붙이며 발목을 잡는 야당 사이에서 쫓길 때 박 대통령이 한번 만나주거나 전화를 걸어 분명한 속내를 전한 적도, 의견을 들은 적도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시키면 국민연금의 취지가 무너진다며 반대 소신을 밝힌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면담 기회마저 주지 않은 채 자진 사퇴시켰다. 올 1월 청와대 문건 사건 때는 김영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국회에 출석하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명을 거부하고 사표를 내던졌다. 지난해 말엔 이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 대통령의 인사 관련 뒷담화를 늘어놓는 ‘사건’도 있었다. 그들이 대통령을, 안 되면 비서실장이라도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렇게 배신자가 됐을까?

국정논의 상대 없는 카이사르

브루투스는 카이사르를 살해한 이유를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대부분의 참모들(문고리 3인방 제외)이나 국회의원들이 나라 사랑은 없고 자기 정치나 하려는 정상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을 국정의 논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자세가 자꾸 배신자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유승민#박근혜#하극상#동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