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성완종 특검’은 특검의 무덤 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4일 03시 00분


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발족한 뒤 4월 중순경 만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며 메모지에 ‘1+α’라고 썼다.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홍준표 경남지사는 상대적으로 수사하기 쉬울 테지만 이완구 국무총리는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나머지 6명은 “운 좋게 풀리면 모를까…”라며 사법 처리 가능성을 극히 낮게 봤다.

리스트 외 더 나올 수 있다

홍준표와 이완구만 기소한 수사 결과는 두 달 전에도 예측 가능했던 셈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누가 수사했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사 출신인 홍 지사는 “성완종의 메모 중 홍준표 것만 사실이고 다른 분들 것은 모두 허위였다는 말이냐”고 항변했다.

고 성완종 경남그룹 회장은 왜 목숨을 끊기 전 ‘김기춘(10만 달러) 허태열(7억) 유정복(3억) 홍문종(2억) 홍준표(1억) 부산시장(2억) 이병기 이완구’라고 쓴 메모를 남겼을까. ‘사기꾼은 자살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과연 그가 남긴 메모는 신빙성이 있는 걸까.

경남기업 수사 이후 성 회장이 이들과 특별히 통화를 자주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구명 로비를 거절당해 복수심 때문에 지목했다는 것은 추측일 뿐이다. 8명을 지목한 이유와 기준은 여전히 아리송하다. 다만 구속영장이 청구되기 하루 전인 4월 5일부터 성 회장이 심경 변화를 일으켜 ‘폭로용’으로 메모를 작성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황만 있다.

수사팀은 성 회장이 숨지기 전 14일간의 행적을 정밀하게 복원했다. 유족 및 비서진에 대한 조사와 함께 폐쇄회로(CC)TV 분석과 휴대전화 통화기록 및 위치추적을 통해 심혈을 기울인 결과 ‘로비장부’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성 회장은 측근들에게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 묻지도 말라”며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경남기업 비자금의 최종 출구를 아는 사람은 숨진 성 회장밖에 없다. 수사팀 관계자는 “메모의 8인에게서 더 나올 내용은 없다”고 장담했다. 특별검사의 재수사를 감안해 빈틈을 남기지 않았지만 “리스트에 없는 사람들이 더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권 핵심 실세를 수사하는 사건의 성격상 올해 4월 발의한 ‘별도 특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 결국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을 도입하든, 아니면 지루한 공방을 펼치다 특검 도입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

두 번 망신 줄 필요 없다

검찰은 홍준표와 이완구, 그리고 홍문종 의원을 제외한 사람들을 소환조차 하지 않아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추궁할 거리가 없는데도 소환하는 것은 수사의 정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차피 특검의 손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면 굳이 두 번씩 망신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20억 원가량의 세금을 쓰는 역대 특검 중 성공 사례를 찾긴 힘들다. 돈 준 사람도 로비장부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특검을 맡아도 성과를 내긴 힘들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면 12번째 특검으로 기록될 ‘성완종 특검’이 특검사에 또 하나의 실패 사례를 추가할 것만 같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성완종 리스트#홍준표#이완구#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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