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재의결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에 따른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이로써 위헌 논란에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초래했던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 38일 만에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청와대는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고 환영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투표 불성립으로 사실상 폐기된 것에 대해 과정이야 어찌 됐든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잘못된 국회법 개정안이 바로잡힌 것은 다행이지만 이로 인한 정치적 혼란은 컸다.
국회법 개정안 사태는 발단부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온통 변칙투성이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연계해 이를 밀어붙인 것부터 잘못이고, ‘입법독재’가 ‘식물정부’를 만들 수 있는데도 새누리당이 덜컥 받아들인 것도 잘못이다. 청와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무산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수용해선 안 된다는 뜻을 여당에 전했다고 하지만 새누리당은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당청 간에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는 개정안의 문구를 ‘요구’에서 ‘요청’으로 바꾸고도 강제성이 있느니, 없느니 공방을 벌였다. 당초 개정안을 수용했던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진노에 화들짝 놀라 태도를 바꾼 것도 옹색하지만, 반란표가 나올까 두려워 재의결 표결에 불참하는 변칙을 택한 것도 당당하지 못하다.
여야 간 법안 협상과 처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원내대표다. 정치권은 국회법 개정 문제로 논란을 벌이면서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국정을 겉돌게 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정치권을 향해 공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대통령과 정치권, 대통령과 여당이 대립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국회선진화법을 앞세운 야당의 정략과 고집이 단초가 됐지만 여당의 원내사령탑인 유승민 원내대표의 판단 착오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이제 국회법 개정안 문제도 결자해지(結者解之)한 만큼 유 원내대표는 불필요한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놓고 벌어지는 당내, 당청 갈등으로 보면 물러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요구했다고,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사퇴를 압박한다고 해서 사퇴하라는 게 아니다. 경위야 어찌 됐건 국회법 개정안 사태를 일으킨 데 대해 원내대표로서 당당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새누리당 지도부도 국민이 원하는 당청관계로 거듭나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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