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담담하게 말했다. 8일 의원총회의 결론을 전하러 국회 의원회관을 찾은 김무성 대표를 맞은 자리에서였다. 하지만 국회 기자회견장으로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층수가 바뀌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착잡해 보였다.
유 원내대표는 임기를 7개월이나 남겨둔 채, 취임한 지 156일 만에 사퇴의 변을 밝혀야 했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으며…’란 제목의 원고를 꺼낸 그의 얼굴은 만감이 교차했다. “저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혼란으로 큰 실망을 드린 점은 누구보다 저의 책임이 크다.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 원내대표는 자진 사퇴 압박에 계속 버텼던 이유도 설명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며 “나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의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힘줘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 요구가 비민주적이라는 점을 에둘러 표현하며 한때 가장 가까웠던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42년 전인 1973년 유 원내대표의 아버지인 유수호 전 의원(당시 부산지법 부장판사)이 박정희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판사 재임용에 실패했었으니 2대째 악연을 이어간 셈이다.
유 원내대표는 전날 늦은 밤까지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혼자 ‘사퇴의 변’을 작성했다고 한다. 이날 오전 8시경 출근해서도 보좌진에게 “의총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이른 뒤 5시간 동안 홀로 숙고의 시간을 가졌다. 유 원내대표는 기자회견 직후 설렁탕을 함께 먹으며 5개월 동고동락한 원내부대표단을 달랬다. “자네들은 이제 자유다”라고 농담도 건넸다고 한다.
그는 당분간 잠행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거치며 비박계의 대표주자로 부상한 만큼 다음 행보를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도 “더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합의의 정치’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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