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친노무현) 진영에 대한 호남 민심의 이반이 야권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까. ‘신당(新黨)’ 창당은 명분, 인물(대선주자), 물적 토대라는 3박자가 맞아야 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불문율이다. 신당이 출범한다 해도 그 정당이 정계개편을 추동할지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야권의 신당 담론은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박지원 의원 3개 축으로 돌고 있다. 이들의 구상과 한계를 짚어봤다.
○ 전방위 접촉에 나선 천정배
박지원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신당은 상수(常數)”라고 말했다. 그 상수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천 의원이다. 그는 4·29 재·보궐선거 광주 서을에서 당선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표방했다. 9일 새정치연합 탈당을 선언한 당원 100여 명 중 일부는 천 의원 선거를 도왔다. 천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당이나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 야권을 재편하겠다고 이미 출마하면서 밝혔다”고 했다.
최근 천 의원을 만난 새정치연합 인사는 “천 의원은 궁극적으로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언론, 법조, 재야에서 새로운 인사들을 발굴한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천 의원 자신을 비롯해 정동영 김근태 신기남 추미애 등이 국회에 입성했고, 이듬해 DJ 집권의 밑거름이 됐다.
천 의원은 새정치연합의 친분 있는 의원들과도 만나고 있다. 8일에는 새정치연합 문병호 의원 등과 저녁을 했다. 문 의원은 안철수 의원과도 가깝다.
재·보선에서 천 의원의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염동연, 이철 전 의원은 이미 여의도 부근인 영등포구 당산동에 사무실을 열었다. 채일병 조재환 김낙순 전 의원도 가세했다고 한다. 염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신당의 설계는 끝났다. (총선에 나설) 장수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천 의원은 개혁 보수인 새누리당 출신 김성식, 정태근 전 의원을 상대로 합류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천 의원이 10월 재·보선에 후보를 낼지도 관심사다. 최종심이 나진 않았지만 전북 익산시장과 전남 장흥군수 선거가 예상된다. 호남 민심을 재확인할 기회인 셈이다.
천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천 의원은 신당설을 퍼뜨리는 전·현직 의원들과의 결합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내년 총선에서 시민연대 형식으로 호남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10명 안팎의 정예 인사와 출마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열쇠는 얼마나 참신한 인물을 영입하느냐에 달렸다. 신당 인사들이 전직 의원들 중심으로 채워질 경우 신당 바람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 김한길 ‘중도 정당’으로 힘 모을까
최근 김한길 의원을 만난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김 의원은 수직선상의 양극인 진보와 보수의 중간이라는 의미의 중도가 아니라 그것의 위 공간을 점유하는 중도를 구상하더라”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이념, 지역, 세대를 뛰어넘는 중도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의원은 올해 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야권의 재구성과 창조적 파괴’를 강조했다. 여기에는 문재인 대표에 대한 불신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김 의원의 마음은 당에서 이미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 대표가 5월 비노(비노무현) 진영을 공천 지분 나눠먹기에 매달리는 사람들로 규정한 듯한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 파문을 일으키자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김 의원의 당내 추동력이 부족하다는 점. 외부의 동력은 천 의원뿐이다. 그러나 ‘뉴 DJ’를 모으겠다는 천 의원에게 김 대표는 같이할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 정치토론회를 열었던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과 함께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유 전 원내대표가 탈당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다만 김 의원은 최근 일부 언론의 ‘신당 추진’ 기사를 보고 “너무 빠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뜻이다.
○ 신당 분위기만 잡는 박지원
박 의원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신당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고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신당과 분당(分黨)이 언급된 건 문재인 당 대표를 뽑은 2·8전당대회 때부터였다. 당시 문 대표의 경선 상대였던 박 의원은 “문 후보가 당선되면 당이 쪼개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표 취임 후 친노 패권주의 논란은 계속됐고 탈당한 천 의원은 당선됐다.
그러나 박 의원 본인은 신당 합류 가능성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거리를 뒀다. 여기에 이날 저축은행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그의 행보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게 됐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지금 신당을 얘기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위기론을 키워 기득권을 지키려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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