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협상서 유승민 사퇴까지 무능 무기력 무책임 보여준 여권
어린아이도 실패에서 교훈 얻는데 소통 의사결정 보고체계 언론관계
임기반환점 앞두고 이번엔 바뀔지
△아빠: 넌 내가 정해 주는 여자랑 결혼해라. △아들: 싫어요! △아빠: 그 여자는 빌 게이츠의 딸이란다. △아들: 그럼 좋아요.
아빠가 빌 게이츠를 찾아갔다. △아빠: 당신 딸과 내 아들을 결혼시킵시다. △게이츠: 싫소! △아빠: 내 아들은 월드뱅크 CEO요. △게이츠: 그럼 좋소.
이번에는 아빠가 월드뱅크 회장을 만났다. △아빠: 내 아들을 월드뱅크 CEO로 임명해 주시오. △월드뱅크 회장: 싫소! △아빠: 내 아들은 빌 게이츠의 사위요. △월드뱅크 회장: 그럼 좋소.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읽은 글이다. “이런 아빠가 되고 싶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 정도면 ‘협상의 귀재’ ‘소통의 달인’ ‘뒷수습의 현인’이란 칭송을 들을 만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다르다.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부터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까지 지난 몇 달간 여권은 밑천을 완전히 드러냈다. 서툰 협상, 황당 소통, 거친 뒷수습까지 무능 무기력 무책임의 3무(無) 종합선물세트를 국민에게 안겼다. 그간 과정을 대화체로 풀면 이렇지 않을까.
△새누리당: 어명이오. 공무원연금을 개혁합시다. △새정치민주연합: 그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고쳐 주시오. 시행령 안 고치면 협상 못 합니다. △새누리당: 세월호법 시행령만 못 고치니 차라리 관련 국회법을 개정합시다. △새정치연합: 그럼 좋아요.(서툰 협상)
△유 전 원내대표: 공무원연금 개혁을 드디어 성사시켰습니다. 국회법만 살짝 바꾸면 됩니다. △청와대: 안 돼요. 차라리 공무원연금 개혁을 미룹시다. 이어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유 전 원내대표: 청와대도 협상 내용을 다 압니다. △새누리당 의원들: 그럼 좋아요.(황당 소통)
△박근혜 대통령: 유 전 원내대표를 심판하세요. △새누리당 의원들: 국회법 개정안 폐기로 어떻게 안 될까요? △친박(친박근혜) 의원들: 대통령이 탈당할 수도 있어요. 분위기 파악 좀 하세요. △새누리당 의원들: 그럼 유승민 나가세요.(거친 뒷수습)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우리 아들딸들을 위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유 전 원내대표가 사퇴하면서 강조한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정도만 아들딸의 뇌리에 남은 것은 아닐까.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이다’라고 문제를 내면 상당수 아이들은 ‘대한민국은 우리나라다’라고 답한다니 모처럼 헌법 공부를 제대로 한 셈이다.
대한민국은 저성장의 긴 터널에 이미 들어섰다. 수출 부진에 내수 침체, 저출산 고령화까지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정치는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연약함이 가장 강한 권력”이라고 했다. 이유는 이렇다. “오늘날 누가 가장 강한지 자문해 보라. 갓난아기다. 갓난아기는 연약한 존재여서 어른들을 지배할 수 있다. 연약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다.”(‘미움 받을 용기’ 중)
우리 정치가 딱 ‘갓난아기’ 수준이다. 유 전 원내대표는 학대받는 아이처럼 질질 끌려나가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쳤다. 박 대통령이 낙인찍은 ‘배신의 정치’에 대한 항변이다. 친박계는 “실제 약자는 거부권 행사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통령”이라고 받아친다. 그렇게 따지면 투표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국민은 뭐란 말인가.
누가 더 연약한지는 관심 밖이다. 어린아이도 실수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 이번 사태에서 여권은 무엇을 느꼈을까.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여권 내 의사소통과 의사결정 구조, 보고 체계, 여권 주요 인사의 역할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때 반드시 짚어야 할 게 대언론 관계다.
요즘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대변인 놀이’가 유행이다. 기자들끼리 서로 궁금한 사안을 묻고 청와대가 내놓을 만한 예상 답변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언제쯤 만날까요?’라고 물으면 “정해지는 대로 여러분이 제일 빨리 알게 될 겁니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인사와 관련한 질문엔 “확인이 어렵다”,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물으면 “기사를 잘 보고 있다. 여러분과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넘기면 된다.
이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문제가 아니다. 별다른 권한도 없이 사소한 것에도 책임만 추궁당하는 현 정부의 분위기가 투영된 결과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기 전에는 청와대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 수 없는 구조에선 언제든 ‘대통령의 독선’ 논란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여권 내홍은 집권 3년 차마다 반복돼 온 대통령 5년 단임제의 구조적 폐단이다. 내년 총선을 전후해 당청 관계는 다시 요동칠 것이다. 그게 역사의 증언이다. 결국 청와대가 기댈 곳은 여론뿐이다. 그때 누가 청와대의 고민을 대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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