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나선특구 진출 中기업에 노골적 퇴출 협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7일 03시 00분


일방적으로 계약 변경… 토지사용료 10배 인상 요구

북한이 나선경제특구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을 상대로 최근 일방적으로 토지 사용료를 10배나 올리고 50년이었던 토지 임대 기간도 20년으로 대폭 축소했다고 대북 소식통들이 16일 밝혔다.

이런 조치는 올 들어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를 구애하던 분위기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향후 북-중 관계뿐만 아니라 북한의 대외 신용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조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나선 지역에 제2의 개성공단을 설립하려는 한국 정부의 구상 역시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새 법을 따르지 않으면 압류하겠다”

나선에서 무역업을 하는 중국인 소식통 A 씨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7월 들어 중국 기업들에 “기존의 계약서는 효력을 상실했으니 새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통지했다. A 씨는 “새 계약서엔 토지 임대 기간이 기존의 50년에서 20년으로 변경돼 있었고, 평당 수십 달러 수준이던 토지 사용료도 10배나 높이 책정돼 있었다”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라 짐을 싸는 (중국)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A 씨는 또 중국 기업인들이 항의하자 북한 당국은 “우리 땅에서 우리 법을 따르지 않는다면 공장을 압류하고 내쫓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소식통 B 씨도 “중국이 설비와 자재를 공급하고, 북한이 인력을 제공하는 합작기업에도 최근 북한이 인사와 직원 관리 권한을 전적으로 행사하겠다고 통지했다”고 밝혔다. 소식통들은 이번 조치가 사실상 중국 기업을 내쫓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한 당국이 나선 이외 지역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에도 같은 내용의 통보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조치와 더불어 북한 내 중국인들에 대한 압박과 처벌도 최근 대폭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선에서 사업하던 중국인 사업가 C 씨는 올 초 간첩으로 몰려 북한 보위부에 수개월 동안 감금됐다. 북한 당국은 영사 접근권조차 허용하지 않고 조사했다. C 씨가 평소 앓던 당뇨와 신장병이 악화되자 북한 당국은 합의금 명목으로 수십만 위안을 받고 석방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나선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중국인 D 씨는 지난해 말 북한 종업원이 음란물을 봤다는 이유로 보위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영업정지와 함께 벌금 폭탄을 맞았다. 큰 손해를 본 D 씨는 식당 문을 닫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 외에도 차명 전화 사용 등을 평소 묵인해 오다 갑자기 불법이라며 체포하는가 하면 북한 당국이 발급한 ‘차량통행표’를 부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국인 관광객 차량을 압수한 사례도 있다. 북한은 체포된 중국인들에게서 숙박비와 조사 비용까지 받아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중 관계 악화에 따른 보복성 조치

나선에서 벌어지는 조치들은 올 5월 중국 조선족 기업인들을 북한으로 초청해 “북한은 안정적인 투자처”라고 선전하며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에 적극 투자하라고 권유하던 움직임과 완전히 상반된 기류다.

A 씨는 “북한이 (대표적인 친중 인사인) 장성택을 처형한 이후 북-중 관계가 악화되고,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김정은이 즉흥적인 보복성 조치를 내놓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중국 기업들이 큰 피해를 보고 쫓겨나면 앞으로 북한에 투자하겠다는 중국 기업인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A 씨는 “예전엔 지인에게 ‘나선이 북한에서 가장 개방된 곳이니 투자하라’고 권유하던 일부 기업인들이 요즘엔 ‘중국 기업은 완전히 봉이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기업의 피해가 확산되면 중국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북-중 관계가 악화될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반북 정서 역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에도 중국 시양(西洋)그룹이 2억4000만 위안(약 444억 원)을 북한 옹진광산에 투자했다가 북한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쫓겨나자 중국 국민이 분노한 사례가 있다.

북한 최초의 경제특구인 나선엔 현재 대북 진출 중국 기업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다. 파악된 중국 기업만 수십 개에 이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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