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정보기관에는 자살의 문화가 있다. 그것을 굳이 문화라고 부른 것은 특정한 자살에 어떤 명예로움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정보원은 적에게 발각됐을 때 평소 갖고 다니던 독약을 입에 털어 넣거나 휴대하던 총을 스스로에게 쏴 자살을 시도한다. 개인적으로는 극심한 고문을 피하기 위한 것이면서 국가를 위해서는 공개해서는 안 되는 정보의 공개를 막기 위한 것이다.
▷국가정보원에서는 자살이나 그 시도가 때로는 정상적이 아닌 일탈적 정보활동을 숨기기 위해서도 나타난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해 3월 유우성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 권세영 당시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 2005년 11월에는 안기부 불법 감청 사건 수사에서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청을 한 안기부 ‘미림팀’을 이끈 공운영 씨도 수사 도중 흉기로 자해를 시도했다.
▷서구에서는 정보원이 불법행위를 한 조직을 보호하려고 희생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반대로 조직이 정보원을 희생시켜서 스캔들이 되는 경우는 있다. 2003년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국방부 정보국을 위해 일하던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신원을 공개해 자살에 이르게 한 사건이나 2002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인 밸러리 플레임의 신원을 드러나게 한 리크게이트 사건이 그렇다.
▷국정원에서 휴대전화 해킹프로그램 RCS를 도입하고 직접 운용을 담당한 직원 임모 씨가 자살했다. 그는 죽기 전 관련 전산기록을 모두 삭제했다. 국정원은 그의 자살로 불필요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삭제된 파일은 100% 복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완전한 복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운영자가 없으면 잘못이 모두 운영자 개인의 일탈로 돌아갈 수 있다. 그가 삭제한 자료는 유서에 썼듯 ‘대북 공작 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자료들’이다. 오해라 해도 불식시킬 수 없으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