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이 영정 들고… 21일 경기 용인시 평온의 숲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국가정보원 임모 과장의 발인식에서 육군사관학교 생도복을 입은 첫째 딸이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앞서 걸어가고 있다. 임 과장은 18일 용인의 한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용인=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국의 블랙홀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여야는 원내대표급으로 협상의 격을 높였지만 21일에도 최종 합의점을 찾는 데 난항을 겪었다. 전날 여야 원내수석부대표의 만남에서 각각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돌파구 마련을 위해 새누리당 원유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긴급 회동한 것.
박근혜 대통령은 열흘 넘게 긴 침묵을 이어 갔다. 국정원이 삭제된 자료의 복구를 공언한 만큼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여야 정치권은 서로 ‘네 탓’을 주장하며 국익과는 무관한 정쟁의 수위를 높였다.
○ 이견으로 한때 협상 중단
새누리당 원 원내대표와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새정치연합 이 원내대표와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3시 40분부터 국회에서 ‘2+2’ 회동을 열었지만 오후 6시경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한 채 협상이 중단됐다. 이어 여야는 오후 8시 10분경 새정치연합 이 원내수석부대표가 빠진 채 추가 협상을 시작했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여의도 모처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과 만나 추가경정예산안과 관련한 논의를 했다고 한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이어 오후 10시 32분경 다시 참여하면서 회동은 ‘2+2’ 형태로 심야까지 진행됐다.
원 원내대표는 “민생과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며 “국정원 사건도 안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여당 (원내)대표도 휴대전화를 쓰지 않느냐. 국민 불안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 안철수 의원 무더기 요청 논란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이 이날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새정치연합 국민정보지키기 위원회’ 명의로 국회 정보위 등 상임위를 통해 국정원 등에 해킹 관련 자료 제출을 무더기로 요청한 것도 논란이 됐다.
요청 자료는 △RCS(리모트 컨트롤 시스템)의 테스트 시점부터 최근까지의 모든 로그파일 원본 △RCS 외 유사 프로그램 구매·운용 자료 △숨진 직원이 삭제하거나 수정해 훼손된 디스크 원본과 복구 파일 △숨진 직원의 진술서와 감찰 조서 등 7개 분야 30가지다.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안 의원이 이제는 본인이 속하지 않은 상임위들을 통해 국정원에 무더기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며 “정보위에 정식으로 들어가 직접 국정원 현장 조사까지 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안 의원 측은 “정보위에 들어와도 새누리당은 자료 제출 요구를 하지 않고 현장 검증으로 끝내자고 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 박 대통령 전략적 침묵의 이유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16분간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지만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자살한 해킹 담당 실무자가 “오해를 일으킬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힌 만큼 사건의 파장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완종 사건’ 당시 박 대통령은 성완종 게이트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낙마한 직후 “검찰은 정치 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하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 카드’를 꺼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성 회장은 유서와 녹취록을 남겼지만 이번 국정원 해킹 논란의 경우 물증이 없어 수사 착수가 힘들 수도 있기 때문. 결국 박 대통령은 사안의 성격이 명확해질 때까지 거리를 둔 채 경제 활성화와 4대 개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전방위 공세에 나선 야당과의 차별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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