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가 26일 ‘국회의원 정수 369명 확대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안을 내놓은 뒤 권역별 비례대표 문제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데 이어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이를 다시 공론화한 것이다.
새정치연합 등 야권은 ‘지역 간 불균형 해소’를 앞세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일 태세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은 반개혁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새누리당, 국회의원 수 늘리면 과반 의석 붕괴
19대 총선에 새정치연합의 혁신안을 적용하면 영호남 지역 간 불균형은 일부 해소되지만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이 붕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아일보가 27일 중앙선관위의 도움을 받아 2012년 4월 19대 총선 지역별 득표율과 인구 비율(2015년 1월 기준) 등을 ‘권역별 비례대표제’안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총 372석 가운데 새누리당이 170석을, 새정치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이 145석을 각각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합당한 자유선진당의 14석을 합쳐도 184석으로 과반 의석(187석)을 넘지 못했다.
이유는 ‘텃밭’인 영남권에서 새누리당이 차지하는 의석수 비율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부산·울산·경남의 경우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0석 중 36석(90%)을 얻었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면 59석(지역 40석, 비례 19석) 중 36석(62%)만 차지하게 된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27석을 싹쓸이한 대구·경북 역시 시뮬레이션에서 의석수가 40석으로 늘어나지만 새누리당에 돌아가는 의석은 30석(75%)에 불과하다.
반면 당시 부산·울산·경남에서 40석 중 3석(7.5%)을 얻는 데 그쳤던 새정치연합은 18석(31%)으로 늘어난다. 한 석도 얻지 못했던 대구·경북에서도 6석(15%)을 얻는다.
이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특성 때문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면 부산·울산·경남의 인구 비율은 15.65%로 배정되는 의석수는 59석이다. 이 중 정당 득표율에 따라 새누리당은 33석, 새정치연합은 18석을 각각 배분받는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배분받은 의석수인 33석보다 많은 지역구 36곳에서 이겼고, 이 때문에 비례대표로 배정받을 몫이 없어진다. 같은 이유로 새정치연합 역시 서울에서 30석을 배정받지만 지역구 30곳에서 승리해 비례대표 몫은 없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선 의석수가 크게 늘어났다. 인구가 많은 서울의 경우 전체 의석수가 48석에서 73석으로 증가한다. 늘어나는 비례대표 25석 중 새누리당이 17석을 차지했다. 열세 지역인 광주·전북·전남·제주 지역에서도 5석을 추가로 얻었다.
○ 야권의 속내는 다당제?
새정치연합은 27일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두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지금은 국회의원 정수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반드시 의원 수 확대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라며 “현재의 정수를 지키면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원 정수 확대가 아니라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야권은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를 줄곧 주장해 왔다. 투표 가치의 등가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국회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비례대표가 늘어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야권의 속내는 따로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에는 ‘지역 간 불균형 해소’도 있지만 지금의 양당 구도가 아닌 ‘다당제’로 가려는 전략도 깔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야권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제3당 등 다당제를 위한 토대를 닦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한 시뮬레이션에서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은 19대 총선 당시 13석에서 무려 17석이나 늘어난 40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3정당의 약진 수준을 넘어 제3의 교섭단체 구성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이날 “다당제로 가는 중요한 길이 열릴 수 있다”고 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새정치연합으로서는 내년 20대 총선에서 패하더라도 야권 연대로 단숨에 원내 다수 세력이 될 수 있는 ‘안전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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