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탈북한 북한 고위 인사가 김정은의 공포 통치에 대해 증언하면서 한 말이다.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일이다. 최룡해는 장성택과 더불어 북한 주민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위급 인물이다. 장이 김일성의 사위 신분이었다면 최는 김일성의 가장 가까운 혁명전우이자 북한에선 충신의 대명사로 통하는 최현의 아들이란 배경을 업고 젊어서부터 승승장구했다. 이 정도의 신분은 북한에선 김 씨 혈통 다음으로 인정받는 절대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장성택을 제거하고 최룡해까지 처형한다면 북한 내부에 미치는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탈북 인사가 설명한 구체적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4월 15일 태양절을 맞아 김정은이 군인 축구경기를 관람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행사 시간이 2시인데 김정은은 5시에 나타났다. 행사에 동원된 군인들은 12시까지 경기장에 입장해 꼼짝없이 5시까지 기다렸다. 김정은은 이를 트집 잡아 크게 화를 냈다. 행사 조직을 잘못해 많은 군인이 대기하느라 큰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총정치국 행사과장(대좌)이 불똥을 뒤집어쓰고 다음 날 고사기관총으로 처형됐다. 그러나 이는 사실 김정은이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부하에게 생트집을 잡은 것이다. 행사과장이 처형된 날 비공개 군부 사상투쟁회의가 열렸다. 보위사령관이 맨 앞에 나서서 최룡해를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부하가 상관을 이처럼 성토하는 것은 이미 제거 각본이 써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최룡해는 울면서 자아비판을 했고, 나중에 장성택처럼 군인들에게 끌려 나갔다. 하지만 처형은 면했고, 구금돼 조사를 받은 뒤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되는 것으로 끝났다.”
이 증언을 검증하기 위해 지난해 4월 북한 보도를 찾아보았다. 우선 김정은의 행적을 보면 4월 6일과 7일 이틀 연속으로 군 소속 축구팀의 경기를 관람한 것이 눈에 띈다. 4월 초 김정은의 관심 주제가 축구였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음으로 최룡해의 행적을 보면 4월 13일 태양절 기념 군장병 예식에서 김정은에게 충성 맹세 연설을 했고, 15일 새벽엔 김정은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도 방문했다. 그러곤 갑자기 언론에서 사라져버렸다. 19일 열린 비행사대회, 21, 23일 잇따른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 24일 개최된 인민군 창건 82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와 같이 총정치국장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중요한 행사와 대회에 모두 빠졌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룡해는 26일 열린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의에선 그를 총정치국장에서 해임시키고 황병서에게 차수 계급을 수여함과 동시에 후임으로 임명한다는 안건이 가결됐다. 황병서는 15일에 상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했는데, 11일 만에 다시 차수로 사상 초유의 벼락 승진을 해 총정치국장이 됐다.
이를 미루어 보면 최룡해가 4월 15일부터 26일까지 12일 동안 어떤 고초를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5일까지 멀쩡히 활동하고, 해임이 발표된 뒤 5월 초부터 사복을 입고 김정은을 다시 열심히 따라다닌 것을 보면 건강상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마 이 기간이 탈북 간부가 이야기한 최룡해의 위기 시점이 아닐까 싶다.
최룡해는 왜 제거 대상이 됐을까. 그 힌트를 “최룡해는 장성택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절대로 장성택 숙청에 찬성하거나 동조할 리가 없다”고 한 탈북 인사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최와 장은 오랫동안 함께 일을 했다. 최룡해는 1986년부터 1998년까지 회원이 500만 명이나 되는 북한 최대 조직인 청년동맹의 수장을 지냈다. 청년동맹을 직접적으로 지도하는 노동당 부서가 청년사업부다. 장성택은 1980년 중반부터 1995년까지 노동당 청년사업부 수장으로 있었다. 둘은 지도기관장(장성택)과 산하기관장(최룡해)으로 10년 넘게 손발을 맞춘 것이다.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후 이듬해 4월까지 수많은 장의 측근이 처형되거나 정치적 숙청을 당했다. 장성택 못지않게 오랜 기간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최룡해가 숙청된 간부들과 친분이 없었을 리 없다. 매일같이 가까웠던 간부들이 김정은이 휘두른 숙청의 칼날에 우수수 목이 잘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을 최룡해의 심정은 어땠을까.
반대로 김정은의 입장에선 그런 최룡해가 군부 수장이란 사실이 너무 불안했을 듯싶다. 하지만 최룡해까지 죽이기엔 떠안아야 할 부담이 너무나 크다. 또 최룡해는 상징성은 크나 장성택에 비해 김정은 권력에 미치는 실질적 위협은 작은 인물이다.
애초에 김정은은 최룡해를 죽일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냥 실권이 없는 한직으로 밀어내 견제해야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리고 군부는 함께 손에 피를 묻힌 황병서에게 맡기는 것이 당분간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쪽엔 최룡해가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김정은이 가장 경계하는 인물일지 모른다. 고사기관총으로 즉결 처형당했다는 행사과장은 최룡해를 권력의 외곽으로 밀어내기 위한 억울한 희생양이었을 것이다. 권력 유지의 도박판에 판돈으로 걸려 있는 목숨들이 가련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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