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일본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 친구들 덕분에 쾌적하게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명동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사는 광화문 주변의 음식점이나 옷가게 등 점포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도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많다. 내가 일본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쪽에서 먼저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에 놀라워하자 “관광지니까 일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뿐”이라고 지인이 말해 주었다. 그러나 일본이라면, 가령 아사쿠사(淺草)나 긴자(銀座) 같은 곳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본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우는 쪽이 발음 등의 면에서 쉽다는 것을 참작하더라도 적어도 서울에서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 같다.
내가 만난 이들 중 일본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대략 나눠 보면 ‘일 때문에 공부한 사람’ ‘만화 등 일본문화를 좋아해서 독학한 사람’ ‘식민시대에 어쩔 수 없이 익힌 사람’ 등이 있다. 식민시대에 익혔다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하는 일본어는 이해하지만 굳이 사용하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반갑다며 유창한 일본어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있다.
작년 아시아경기대회 때의 일이다. 축구 일한전을 TV로 보자며 우리 집에 지인들이 모였다. 그중에는 처음 만난 한국인도 있어 어색한 분위기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국인 친구가 “당신들은 숙명적인 관계가 아닌가”라며 우리를 번갈아 보면서 말하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그때 처음 만난 한국인이 “일본과의 경기는 언제나 익사이팅하니까 재밌다”며 장난기 섞인 말로 대응해 주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각자 자기 나라를 응원하면서 시끌벅적하게 관전했다. 경기 종료 후에는 경기 내용이나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 품었던 염려는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서툰 내 한국어 실력으로 나눈 대화였으나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동의할 수 없어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는 있다. 작은 일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나 오해해 버리는 일도 있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도 그런데 말과 습관이 다른 나라 사람끼리는 더욱 그럴 것이다. 자기 쪽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항상 서로가 다르다는 인식을 바탕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일본과 가까운 나라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리가 아니라 친밀감을 피부로 느낀다. 나는 한국에서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싫은 경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한 택시 운전사는 일본 정부에 대해 불평하기도 했으나 그 뒤에는 “하지만 일본인은 성실하고 예의 바르니까 좋아한다”고 말하며 내릴 때는 “사요나라”라고 일본어로 인사까지 해 주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일본어를 이용해 커뮤니케이션하려는 사람과 만나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일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서글펐다. 일시 귀국했을 때 “한국사람 무섭지 않아?”라고 아는 이들이 물어올 때가 있다. 한국인이 자기 의견을 확실히 밝힌다거나 직선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 성격이 강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한편 확실히 뭔가를 말하지 않고 태도도 어중간한 일본인에 대해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한국인도 이해가 간다.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해 보면, 그리고 문화를 접해 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노력도 없이 막연한 분위기나 이미지를 먼저 형성시키는 것은 아닐까.
남편의 일 관계로 8월 말에 일본으로 귀국하게 됐다. 남편도 나도 한국을 좋아하는 만큼 아쉬운 점도 많다. 한국에서의 3년 8개월 경험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한국과 관계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칼럼을 쓰게 되면서 새삼 한국을 의식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은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좋은 경험이 됐다. 내가 느낀 한국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사람 냄새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사람들 속에서 본 것은 매뉴얼 사회인 일본에서 온 나에게 있어서는 신선한 것이었다. 사람과 관계하는 것을 되도록 피하려 하는 일본인과 비교해 한국인은 정겹고도 참견이 많으며 이야기도 잘한다. 그런 인간미 있고 따뜻한 한국인을 접하면서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는 사람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끝>
※가와니시 히로미 씨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주부다. 한국에서 산 지도 4년째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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