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선거운동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기 이틀 전인 지난달 28일 국회의 정치개혁특위 법안심사소위는 공직선거법의 관련 규정을 폐지하기로 의결했다. 헌재 결정이 내려진 뒤인 어제 새누리당 측이 “헌재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논평을 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소위 위원장인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폐지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헌재의 결정 취지와 당 의견을 무시하는 독단이다.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대부분도 폐지 논의가 이뤄지는지 몰랐고, 당론을 모은 적도 없다고 한다.
이 제도는 대통령선거 총선거 지방선거 등의 선거 기간 중 인터넷 언론사의 게시판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때 실명을 쓰도록 한 것이다. 헌재는 “선거 기간 중 허위 사실이 유포될 경우 정보 왜곡이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일어날 수 있다”며 “인터넷 실명제는 선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2010년에도 이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에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각각 7 대 2였으나 2012년 재판관 구성이 달라져 이번엔 5 대 4로 폭이 좁혀졌다. 아직은 재판관 다수가 선거 기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야당 등 일각에서는 평상시 인터넷 실명제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조항이 2012년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점을 내세워 헌재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정치 참여와 정치적 의사 표현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범죄의 경우 명예훼손죄나 후보자비방죄 처벌 같은 다른 제재 수단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선거 기간의 근거 없는 비방이나 흑색선전은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상시와는 분명히 다르다. 선거가 끝난 뒤 처벌을 해도 선거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선거에서는 공정성이 자유의 가치 못지않게 중요하다. 음주운전을 금지한 법에서 개인의 자유보다 사고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선거 때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범죄다. 여야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파적 시각으로 볼 게 아니다. 여야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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