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마다 쇄신-혁신 ‘반짝장사’… 말로만 “뼈를 깎는 노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5일 03시 00분


[여의도 정치 ‘3대 고질병’ 고쳐라]<下>말잔치로 끝나는 정치개혁

지난해 9월 여야는 철도 부품 납품비리 혐의로 기소된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구속 중)의 체포동의안을 본회의에서 부결시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방탄국회를 열지 않겠다”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말은 허언(虛言)이 됐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중 상당수도 반대표를 던져 ‘가재는 게 편’이라는 조롱을 샀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여야 혁신위원회는 경쟁적으로 ‘반성문’을 썼다. 국회의원의 영장실질심사 자진 출석을 허용하도록 제도를 바꾸고 국회가 의원 체포동의요청안을 정해진 기간 내에 표결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하는 내용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을 낸 것.

하지만 해당 법률안은 지난달에서야 국회 운영위원회에 상정만 됐을 뿐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여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식 개혁 시늉이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된 셈이다. 선거를 앞두고는 유권자들에게 “회초리를 쳐달라”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자정(自淨)하겠다”고 약속하지만 표를 얻고 나면 태도가 달라지는 우리 국회의 고질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 野 혁신위만 5번째…번번이 ‘용두사미’

“당의 혁신위 구성이 위기 모면용으로만 활용되기 때문이다. 혁신위 안을 실천해야 될 새 지도부는 당권을 장악하면 혁신안 실천의 의지가 약해진다.”

2013년 초 민주통합당(새정치연합의 전신) 정치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지난달 2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 토론회에서 지적한 야당 혁신위의 반복적인 실패 이유다.

야당은 19대 국회 들어서만도 5번이나 혁신위를 출범시켰지만 모두 ‘용두사미’로 끝났다. ‘정해구 정치혁신위’는 계파 갈등으로 당내 분란만 일으킨 끝에 실패했고, 이후 당권을 잡은 김한길 전 대표 체제의 ‘의원 특권 내려놓기’ 정치개혁안도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올해 2월 종료된 ‘원혜영 정치혁신위원회’는 의원이 회기 중 전체 회의일수의 4분의 1 이상을 무단결석할 때 특별활동비 전액을 삭감하는 법안 등을 발의했지만 실질적 성과로 연결되지 않았다. 다음 달까지 활동하는 ‘김상곤 혁신위’는 △재·보궐선거 원인 제공 시 무공천 △부정부패 연루 당직자 당직 박탈 등 안건을 관철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최고위원제 폐지와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 구성 등 혁신안과 관련해서는 해묵은 계파 갈등을 촉발시키며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 與,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로만’ 혁신안

새누리당도 큰 차이는 없다. 지난해 7·30 재·보선을 한 달 앞두고 이준석 전 비대위원을 위원장으로 내세워 ‘새누리를 바꾸는 혁신위원회’(새바위)를 발족했다.

새바위는 의원과 공천 희망자 등이 도덕성에 대한 자체 해명을 담은 ‘레드리포트’를 인터넷에 공개하자는 등의 과감한 방안을 내놓았다.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등이 도덕성 논란으로 청문회에서 낙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실천으로 연결된 것은 없었다.

그해 10월엔 김무성 대표의 전당대회 공약이었던 ‘상향식 공천’을 이루기 위한 보수혁신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보수혁신위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정당 개혁-정치제도 개혁’의 3단계 혁신을 발표한 뒤 1단계 혁신안을 담은 법안 5개를 모두 당내 의총 추인을 받아 지난해 말 당론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회를 통과한 법은 선거구 획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 획정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내용을 제외한 △영장실질심사 자진 출석 허용 △정치인의 수익성 출판기념회 금지 △무회의 무세비 등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1단계가 지지부진하다 보니 보다 근본적인 혁신 내용을 담고 있는 2, 3단계 혁신안의 실천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참여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고 정치 신인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기간을 선거일 전 120일에서 1년으로 늘리자는 법안의 발의도 4월에야 이뤄졌다.

○ 결국 유권자가 표로 심판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국회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의원들이 생색내기용 혁신을 하고 지키지 않아도 유권자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며 “시민단체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고 유권자들도 선거 때 표로 확실히 응징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도 “고착화된 양당제를 깨는 식으로 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며 “독일의 정당명부식 권역별 비례대표제 같은 제도를 도입해서 외부 충격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홍정수 hong@donga.com·황형준 기자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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