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헌법’을 자주 거론한다. 강만길 서중석 함세웅 씨 등 지식인들은 어제 ‘광복 70년, 역사와 헌법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선언문을 냈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제헌헌법과 민주화운동 정신에 기초해 개정된 현행 헌법의 핵심 가치들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비판하고 분단 극복을 외치던 이들이 대한민국의 토대인 헌법을 강조했다는 게 눈길을 끈다.
▷오늘 서울 백범기념관에서는 ‘누가 반(反)헌법행위자인가’라는 주제로 ‘반헌법행위자 열전’(가칭) 제정을 위한 1차 토론회가 열린다. 기조발제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맡는다. 특이한 것은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수록되려면 일단 공직자이거나 공권력의 위임을 받아 직무를 수행한 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인 1981년 부림사건 당시 고영주 검사,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 등도 수록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로서는 반헌법행위자라고 하면 대한민국을 폭력으로 전복하려고 선동했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통진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위헌 정당으로 해산됐다. 1968년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에 연루돼 형을 산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는 무슨 이유인지 재심도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임명직 공직자가 아니면 모두 빠져나가는 반헌법행위자 열전을 누가 공정하다고 할까.
▷진보좌파진영은 같은 주장을 해도 헌법에 근거한다는 인상을 주면 지지를 얻기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광우병 시위부터 ‘변호인’을 거쳐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원내대표 고별사에 이르기까지,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지닌 호소력을 체감한 탓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과 헌법을 얘기하는 진보가 색다른 것만은 틀림없지만 헌법에마저 편협한 이념을 덧씌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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