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이 ‘열병’ 없는 열병식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관 문제를 두고 한중 정부는 열병식에서 열병 순서를 빼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현재 양국 간 막바지 조율이 진행 중”이라며 “열병 순서가 빠지면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관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군 열병식은 국가원수가 무개차(無蓋車)를 타고 군대를 둘러보는 ‘열병식’과 각 군부대가 국가원수가 서 있는 단상 앞을 행진하는 ‘분열식’으로 구성된다.
군 관계자는 “열병식은 국가원수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자리로 군사적 의미가 매우 강한 의식”이라면서 “열병식에서 열병을 빼고 단지 분열만 하면 ‘군 퍼레이드’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분열만 할 경우 ‘참석’이라는 의미보다는 ‘관람’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대신 ‘참관’이란 표현만 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경도(傾倒)론’을 의식해 전승절 열병식의 의미를 군사적 무력시위가 아닌 항일(抗日) 승리 축하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다음 달 3일 오전 10시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릴 ‘항일 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전승절) 70주년 기념식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개막을 알리는 축하 연설로 시작될 예정이다. 시 주석의 연설은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데 맞춰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어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열병식이 펼쳐진다. 시 주석이 단상에서 내려와 무개차를 타고 중국 인민해방군을 열병할 경우 중국의 군사적 무력시위 이미지가 강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장에서 이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박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열병을 빼고 바로 군부대 행진인 분열을 시작해 ‘축제의 장’처럼 연출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인 것이다.
또 국내 비판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6·25전쟁 때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항일전쟁에 참전했던 공산당 부대들을 앞세우되 6·25전쟁에 참전했던 부대는 열병식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북한군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도 양국이 긴밀히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가 전승절 행사에 여러 나라 군 의장대 파견을 요청했는데 북한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북한군 의장대 파견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자칫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가 북한군의 군사 퍼레이드에 손을 흔드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는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에 대해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 의사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행사 참여 문제는 각국의 주권적 결정사항”이라며 “우리는 한국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일부 외신은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박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불참을 요청했다고 보도했지만 한국 미국 정부 모두 이를 공식 부인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 발표에 앞서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