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북한의 지뢰 도발로 시작된 무력충돌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남북은 오늘 새벽까지 계속된 무박(無泊) 4일의 피 말리는 협상 끝에 북한은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데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고 남한은 ‘비정상적 사태 없다’는 전제 아래 오늘 정오부터 대북(對北)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이 북한의 도발을 놓고 담판을 벌여 수습책을 찾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로써 북의 도발 이후 고조돼 온 남북한 강대강(强對强) 대결이 풀리고 남북 이산가족 명단 교환 및 추석 때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는 등 대화협력의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북의 명확한 사과 아닌 ‘유감’ 표명과 확성기 방송 중단을 맞바꾼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이끌어낸 이번 합의는 남북 지도자 사이 간접대화의 성과라는 점에서 무게가 특별하다. 사실상 남북 지도자가 협상을 주도함으로써 향후 남북 갈등 해결에 적용할 선례가 만들어졌다. 정상들이 간접대화를 했으니 직접대화의 길이 열렸다고 볼 수도 있다. 남북 지도자의 최측근이 장시간 북핵을 포함한 남북 현안을 골고루 논의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과 이산가족 등 현안에 대해 상호 편리한 날짜에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합의한 것도 큰 성과다. 북한 김정은이 도발과 벼랑 끝 전술을 버리고 대화로 나온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흔쾌히 화답해 남북 사이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도 하게 된다.
그러나 어제 박 대통령이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확성기 방송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원칙을 거듭 천명했음에도 확실히 지켜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북은 4일 비무장지대(DMZ) 내 지뢰 도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완강히 주장해왔다. 이미 유엔군사령부 특별조사위 조사 결과에서 밝혀졌듯이 지뢰 폭발은 명백한 북측의 도발이다. 지뢰 도발과 20일 포격 도발에 대해 분명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정당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의 ‘사과’ 아닌 ‘유감’ 표명으로 서둘러 협상을 타결지었다. 과거 도발 때 북이 ‘상호 유감’ 정도로 표현하면 우리는 ‘북의 사과’로 받아들이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도 이 같은 ‘비정상적’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다. 북한의 유감 표명은 우리 측 요구에 미달하는 데다 자신들이 지뢰 도발을 저질렀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을 뿐이다. 이 정도의 ‘타협’으로 북이 강력히 요구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우리 측이 수용하는 것이 합당한지도 의문이다.
북에 대한 진실을 알림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가장 취약한 정통성을 노출시키는 확성기 방송은 우리가 지닌 거의 유일한 비대칭전력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합의한 ‘평화번영 정책’이라며 북의 확성기 철거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번 김정은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 비대칭전력의 위력을 북의 요구대로 포기하는 것은 우리의 비대칭전력을 일방적으로 무장해제하는 것과 다름없다.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지 못했으니 ‘북(北) 도발-남(南) 보상’의 악순환이 완전히 단절될지도 걱정스럽다.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의미를 찾는다면 대통령-군-국민이 모처럼 한 몸이 돼 북한 도발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포격 도발을 한 20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남한의 결연한 대응과 함께 한미가 공동 국지도발대비계획을 처음으로 가동하고 무력시위를 하는 등 도발에 함께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고, 중국도 9월 3일 전승절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북에 자제를 요청한 것이 김정은에게 큰 압박이 됐을 것이다.
남북 합의가 큰 틀에서 반갑기는 하지만 북한이 도발을 완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하고 성급하게 긴장을 푸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남북 불가침협정과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무시하고 핵개발과 무력 도발을 계속했다. 김정일은 2007년 10·4공동선언에서 “불가침의무를 확고하게 준수한다”고 밝히고도 생전 도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 김정일 옆에서 연평도 포격을 주도했던 김정은이 도발을 포기했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행위다. 북한에 대한 빈틈없는 경계와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돼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댓글 39
추천 많은 댓글
2015-08-25 03:19:34
양아치 집단이 확실한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아킬레스건이 대북확성기방송임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우리 입맛에 맞도록 조자룡이 헌칼 쓰듯 사용합시다. 그동안 협상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2015-08-25 05:08:09
이번에도 경험했듯이 가장 믿음직한 안보는 강력한 국방력뿐입니다. 끝없는 무상복지,쓸데없는 인기대형사업등을 과감히 선별하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는길밖에 없습니다. 특히 방산비리자는 철저히 색출하여 엄벌에 처해 재발방지해야 합니다.
2015-08-25 05:44:32
제발 찬물 뿌리는 이야기좀 그만 하시요. 첫술 배부르기를 바랍니까. 이시점에는 모두가 정부를 신뢰하고 밀어 주어야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