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팽팽한 주한미군 공군기지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과 포격으로 촉발된 남북 간 군사적
대치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24일 전북 군산 미군 기지에서 F-16 전투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앞쪽은 공군기지에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 군산=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목함지뢰, 포격 도발로 시작한 북한의 한반도 긴장 끌어올리기는 결국 자충수가 됐다. 비록 남북이 극적 타결을 이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지휘 속에 이뤄진 협상 과정에서 주변국 누구도 북한 편을 들지 않았다. 특히 전승 70주년 기념식을 앞둔 중국이 북한을 향해 드러낸 불쾌감은 노골적이었다. 판문점 합의 타결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대치가 남긴 파장은 외교적으로도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일본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중국행 포기’를 재빠르게 선언하면서 동북아 관계의 함수가 복잡해졌다. 외교적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한 한국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중국 “(북한의) 열병식 방해 좌시하지 않겠다”
중국 반관영 환추시보 영문판(글로벌 타임스)은 24일 사설에서 “누구라도 악의적인 간섭으로 중국의 열병식을 훼방 놓으려 한다면 중국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한반도 사태 악화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 방해 목적이 지적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실상 북한의 지뢰·포격 도발에 의한 긴장 조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재 북-중 관계는 역대 최악이다. 중국 매체가 “자제하라는 (중국의) 권고를 평양이 배격하고 있다”고 쓸 정도다. 이수용 북한 외무상은 말레이시아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않았다. 19일간 외유하면서 러시아, 미얀마, 라오스 등은 물론이고 일본 외상과도 만났지만 22일 베이징(北京)을 거쳐 귀국하는 과정에서 북-중 회담은 불발됐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줏대 없는 나라’ ‘대국주의’라고 비판하며 자신을 편들어주지 않는 중국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런 북-중 관계 악화는 한국에 양면적인 효과로 이어진다. 중국까지 외면하면서 고립에 빠진 북한이 결국 국제사회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최악의 순간에 북한을 컨트롤할 수 있는 레버리지(지렛대)가 없다는 점에서다.
이번 군사적 위기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의 다음 달 2일 중국 방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를 이유로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연기했다. 이와 비교해 훨씬 심각한 사안인 남북 군사적 대치 속에 국군 통수권자가 해외 출장을 떠난다면 반대 여론이 제기될 것은 당연하기 때문. 실제로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이 24일 파키스탄 출장을 연기하는 등 고위 외교관들의 해외 출장도 이미 남북 대치의 영향을 받았다. 외교부는 “엄중한 상황을 감안해 조 차관의 출장이 연기됐다”고 밝히고 이달 말로 예정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해외 출장도 최종 순간까지 유동적인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 안보 의존도 치솟아 대미관계 부담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24일 기자회견에서 “국회 상황 등을 근거로 판단했다”고 결정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이달 초부터 언론에서 방중설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모르쇠로 일관했던 일본 정부가 갑자기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한반도 위기 상황을 활용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을 탓하며 방중 시점에 대해 숨고르기를 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갑작스러운 아베 총리의 방중 포기로 박 대통령의 방중은 더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방 국가들이 모두 외면한 중국 전승절을 한국 정상만 참석하면서 ‘한국의 중국 경사론’이 두드러질 가능성도 커진 상태다. 박 대통령 방중과 중일 해빙을 연계해 올해 말까지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를 통해 외교적 주도권을 쥐겠다는 한국의 구상에도 미세 조정이 필요해졌다.
북한의 이번 도발 과정에서 정찰위성, B-52 폭격기 등 미국의 전략무기 의존도가 높아졌던 만큼 대미 관계에 대한 부담도 늘었다. 미국의 잇따른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승절 참석을 과감히 결정했던 한국이지만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당분간 미국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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