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강(强) 대 강 대치 상황에서 극적으로 출구를 찾음에 따라 앞으로의 남북관계도 급류를 탈 것으로 전망된다. 임기 절반이 지난 박근혜 정부가 이번 ‘2+2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계기는 마련된 셈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24일 “앞으로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다면 임기 전반기를 준비 기간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진전이 없다면 경직된 대응으로 실기(失機)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북한은 체제 유지, 남한은 대북 교류를 맞교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군사적 대치 상황을 극적으로 대화로 풀어낸 만큼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잘 살릴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이산가족 상봉 등 대북 제안 성사되나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답보 상태에 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힘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신뢰 형성을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통일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북한은 2013년 3차 핵실험부터 올해 지뢰·포탄 도발까지 ‘강공’에 나서면서 좀처럼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신뢰를 쌓을 기회조차 만들지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2+2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관계 전반이 의제로 다뤄짐에 따라 남북관계가 새롭게 전개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동북아 정세가 위태로워진다. 남북 모두 출구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며 “이번 고위급 접촉이 대화 국면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등 북한의 응답을 기다리던 대북사업들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한 이산가족 6만여 명의 명단을 북한에 일괄 전달할 것”이라며 “남북 이산가족 명단 교환을 연내에 실현할 수 있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전면적인 생사 확인을 거친 뒤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한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는 방안이다. 인도적 교류이기 때문에 북한이 거부할 명분도 적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명단을 박 대통령이 직접 전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추석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도 예상된다.
○ 도발의 악순환 고리 끊을 기회
이번처럼 남북 사이에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다가 대화에 물꼬가 트이는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북한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도발을 감행한 뒤 대화를 통해 ‘당근’을 얻어내는 전략을 썼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 달 뒤인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됐다. 이듬해인 1994년 3월 남북 특사교환 실무회담에 나선 박영수 북한 대표가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한 발언이 공개되자 서울은 공포에 빠졌다.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고, 미국은 항공모함 5척을 동해로 보내 핵시설 공습 준비를 하는 등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 극적으로 위기가 타결됐다. 결국 1차 핵 위기로 북한은 대북 경수로 지원이라는 당근을 얻었다. 하지만 북한은 비밀리에 핵개발을 지속했다.
또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1999년 6월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김대중 대통령)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강행(노무현 대통령) △2009년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이명박 대통령) 등 북한은 우리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군사적 위협을 가한 뒤 협상을 통해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곤 했다. 도발을 하고 결과적으로 대가만 챙긴 북한의 행태를 이번에는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접촉을 통해 대화 채널을 확보하되 과거 전례를 따르지 않도록 세심한 향후 대척 마련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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