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존 메릴]대북 문제는 결국 남한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6일 03시 00분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
최근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이후 고조됐던 휴전선 일대의 남북 간 군사 대치는 한반도 긴장 완화는 물론이고 더 넓은 의미에서 두 나라 사이에 더 올바른 관계 정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이번 남북 고위급 협상 성공이 증명하듯 박근혜 정부는 탁월한 능력으로 위험한 상황을 관리해왔다. 대화를 통해 극도의 위기 상황을 진정시키는 합의를 도출해낸 박 대통령은 10월 미국 방문 전에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쥐는 기회를 잡게 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朴정부, 안보 관리능력 보여줘

박 대통령은 자칫 잘못될 수도 있었던 마라톤협상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침착함과 인내심을 발휘했다.

서울은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가장 긴박한 한반도 위기 상황을 안정시킨다는 목적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또 다른 군사적 충돌을 막고 6개 항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여기에 더해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민간교류 확대의 길을 연 것은 주목할 만한 상황의 반전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김정일 사망 이후 한국 국민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온 것처럼 보인다. 북한 붕괴론 신봉자들은 과거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남북통일은 분단이 가져온 모든 문제를 끝낼 만병통치약이라고 진정으로 믿는 듯하다. 하지만 핵을 가진 북한이 궁지에 몰렸을 때 한반도에 어떤 위험이 닥칠 것인지에 대해 이제 한국 국민도 점차 깨달아가는 것 같다.

최근까지 ‘군사적 억제’의 논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해 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북한이 향후 몇 년 동안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 공약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북한이 붕괴하는 시나리오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지도자들이 ‘마지막이 가까워 왔다’는 결론을 내리는 순간 자제력을 발휘할 이유는 크게 적어지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통일은 진정 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로 ‘대박’으로 판명이 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형태의 통일이 이뤄지고 남북한이 어떤 경로로 거기에 이르느냐’이다. 이 점에 대해 서울과 워싱턴의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선 생각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 많은 한국인은 박근혜 정부가 시작한 통일정책의 성공을 위해 지속적이고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의 대북정책에서 실패를 거듭한 미국인들은 북한과 관여(engage)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국무부, 북한 문제에 피로감


미국 국민은 북한 문제에 대한 피로감에 젖어 있다. 백악관과 국무부의 정책 당국자들조차 북한과 다시 협상을 시도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의 거래는 정치적인 이득은 거의 없고 어렵기만 한 과제’일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가끔 벌어지는 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북한 문제는 워싱턴의 외교정책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빠져 있다.

워싱턴이 이란 핵 문제 해결과 내년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아무도 북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한국이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나설 것인가. 북한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더 큰 이해관계를 가진 한국은 대북정책 입안에 더욱 무게를 둬야 한다.

한국이 현실적 대안 적극 제시해야

이번 위기 대응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의 중요한 안보 문제를 잘 다뤄 나갈 줄 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 모멘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제 한국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에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좀 더 행동적인 미국의 동맹이 돼야 한다.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이를 위해 한미가 공조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
#대북 문제#남한#주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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