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하룻강아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03시 00분


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멈추려 들다.’ 한자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한다. 강한 상대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걸 일컫는 말이다. 중국 제나라 장공(莊公)이 겪은 일화인데 장자(莊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온다.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나이 든 독자라면 사마귀가 긴 앞다리를 치켜들고 꼼짝 않고 곧추서서 무섭게 생긴 두 눈을 굴리던 모습을 아마 기억할 것이다.

사마귀의 다른 이름이 ‘버마재비’라는 것을 아시는지. 버마재비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쓰던 방언으로 사마귀와 함께 표준어로 올라 있다. 연까씨(경상), 버무땅개비(충북), 오줌싸개(경기 충북) 등 사마귀를 이르는 다양한 방언에 비해서는 버마재미의 형편이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렇지만 입길에서는 버마재비조차 사마귀에 많이 밀린다. 북한에서는 ‘버마재비 매미 잡듯’ ‘버마재비가 수레를 버티는 셈’ 등 남한보다는 많이 쓰고 있다.

당랑거철과 비슷한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게 있다. 한데 ‘하룻강아지’의 뜻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라는 말에 끌려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로 이해한다. 어딘지 이상하다.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가 어떻게 호랑이에게 대들 수 있을까.

하룻강아지의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하릅강아지’가 변한 것으로 본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하릅’은 한 살 된 소, 말, 개 등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하릅강아지는 ‘한 살짜리 강아지’다. 우리 조상들은 가축의 나이를 하릅(한 살), 두습(두 살), 세습(세 살) 등으로 셌다.

우리 사전은 ‘하룻강아지’와 ‘하릅강아지’ 둘 다 표제어로 삼고 있다. 하릅망아지와 하룻망아지, 하릅비둘기와 하룻비둘기도 함께 올라 있다. 하룻강아지는 ‘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강아지’라는 의미를 넘어 이제는 ‘사회적 경험이 적고 얕은 지식을 가진 어린 사람’을 놀림조로 이를 때도 쓴다.

북한의 지뢰와 포격 도발로 촉발된 남북한 긴장이 고위급 접촉으로 풀렸다. 그러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하룻강아지’로 묘사한 패러디물이 등장했다. ‘앞으론 안 까불 께요. 전 애비도 할배도 고모부도 없어요’라는 글과 함께. 그러나 안보는 단판 승부가 아니다. 늘 긴장해야 한다. 작은 싸움에 이겼다고 우쭐대는 것은 ‘하룻강아지’나 하는 일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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