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자의 달콤쌉싸래한 정치]여권 내 ‘치킨게임’은 시작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4일 03시 00분


이재명 기자
이재명 기자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고 했다. 우연한 사건이 엄청난 쓰나미(지진해일)를 몰고 오는 정치권에선 그렇기에 ‘나비의 날갯짓’을 눈여겨봐야 한다.

2011년 홍준표 대표 체제를 5개월 만에 무너뜨린 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해킹’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홍 대표가 임명한 최구식 홍보기획본부장의 비서가 연루되면서 유탄을 맞았다. 사실 홍 대표가 처음 홍보기획본부장직을 제안한 건 김정훈 의원이었다. 당시 당직을 맡으면 이듬해 총선 공천에 유리하기에 김 의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총선 공천 놓고 불거진 세력 대결

하지만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제동을 걸었다. 당시 김 의원은 정책위 부의장이었다. 홍 대표에게 ‘홍판표’란 본명을 ‘홍준표’로 개명하도록 권유한 이가 이 의장일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까웠다. 그러나 그해 홍 대표가 이끈 ‘서민정책특위’와 정책위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결국 이 의장의 반대로 홍보기획본부장은 바뀌었고, 인사 교체라는 ‘우연의 날갯짓’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의 조기 등판이라는 ‘쓰나미’를 불렀다.

공천권은 홍 대표에게서 박 비대위원장에게 넘어갔다. 공천 작업이 한창이던 2012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 당직자를 은밀히 안가로 불렀다. 이 대통령은 4명의 공천 가능성을 물었다고 한다. 이재오 정몽준 홍준표 김무성이 그들이다. 그만큼 친박(친박근혜)계의 공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박 대통령이 직접 배지를 달아준 이들이 3년여 만에 ‘안면 몰수’했다(박 대통령은 그렇게 믿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12년 9월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당시 동행한 한 의원은 박 후보에게 “유승민 의원이 박 후보를 많이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박 후보의 반응은 싸늘했다. “누가요?” 그게 전부였다. 이쯤 되면 알아들어야 할 의원들이 유 의원을 원내대표로 만든 것이다.

‘유승민의 날갯짓’은 ‘승부사 박근혜’를 깨웠다. 국회법 개정안 파문은 유 전 원내대표의 퇴진을 넘어 ‘대구-경북(TK) 물갈이’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3년 만에 다시 서문시장을 찾은 박 대통령은 대구 지역 의원들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 내년 총선 쓰나미를 예고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옹졸함을 비판한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레임덕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결기 앞에 이런 비판이 힘을 얻을 리 없다. 내년 총선에서 가장 절박한 이는 박 대통령이다. 집권 하반기 안정적 국정 운영과 퇴임 이후 박 대통령의 정치적 활로가 20대 총선 결과에 달렸다. 친박계가 당내 캐스팅보트를 쥐려면 20명은 돼야 한다. 자신의 안방인 TK(27석)가 ‘물갈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 김무성 대표와 朴대통령… 승자는?

이제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치킨게임’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이 치킨게임에 얼마나 강한지는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에서 입증됐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물러설 처지도 아니다. 그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제)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친박계는 자신만만하다. 한마디로 “‘오픈’인지, ‘육픈’인지 우린 모르겠고!”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정면대결을 피할 거란 얘기다. 친박계는 앞으로 김 대표에게 ‘총선 승리와 일부 공천권 양보 중 택일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70%가 넘는다”며 여론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 ‘어셈블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론은 변심 직전의 애인 같다.” 결국 김 대표의 최대 무기는 부산-울산-경남(PK) 세력을 등에 업고 TK와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결기다. 만약 TK와 PK가 갈라선다면 1990년 3당 합당 이후 25년 만에 정치 대변혁이 일어나는 셈이다. 결별 수순을 걷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친노무현) 대 비노(비노무현) 갈등과 맞물려 정치 지형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여야 할것없이 시한폭탄 안고 있어

인간은 음식 없이 40일, 물 없이 3일을 살 수 있지만 의미 없이 35초를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35초마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인간 본성 탓에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인지, 아니면 정치권에 쓰나미가 몰려올지는 조만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연말쯤 개각과 청와대 인적개편을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분명히 할 것이다. 야권에 가린 여권의 위태로움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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