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北권력층 자녀 ‘富의 세습’… 이권개입으로 수천만달러 챙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6일 03시 00분


[김정은 등장 5년, 북한은 지금]<3>북한 시장화의 그늘
김원홍 보위부장 아들 김철, 무소불위 권력 ‘새끼 보위부장’
황병서-최룡해 자녀들도 무역 이권 쥐고 신흥 부호로
부패 만연… 주민 90% “뇌물 경험”
공공의료-교육은 복구불능 상태로

김정은 체제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북한의 시장화는 주민 생활 개선이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정부패 확산이라는 사회적 부작용도 낳고 있다. 시장화의 최대 수혜자는 권력을 쥔 고위 간부 계층이다. 이들은 각종 이권에 개입해 뒷돈을 챙기며 재산을 늘린다. 권력이 클수록 오가는 ‘검은돈’ 규모도 커진다.

○ ‘혁명’이란 말 뒤에 숨겨진 부의 세습

김정은 체제 들어 빈발하고 있는 ‘피의 숙청’은 권력 내부의 물갈이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특정 간부가 처형되거나 숙청되는 바람에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경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추악한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이권 사업을 주도하는 이들은 주로 권력자의 자녀들이다.

‘뉴데일리’ 등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와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북한 최대 부자 중 한 명은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아들 김철이다. 청봉무역회사 사장인 김철의 개인 재산은 수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우리 돈으로 수백억 원의 자산가다.

김철은 석유 수입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해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매년 중국에서 수입하는 석유는 약 6억 달러(약 7094억 원)어치. 수입 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차액을 챙길 수 있어 석유 수입권은 막대한 이권 사업으로 꼽힌다.

북한의 석유 수입권은 김정은 체제 초기까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최측근이던 장수길 행정부부장이 사실상 독점해 왔다. 그러다 장성택 숙청 한 달 전인 2013년 11월 장수길이 처형되면서 김철이 석유 수입권을 거머쥔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은 현재 북한 내부에서 ‘새끼 보위부장’으로 불린다. 재력과 아버지의 지위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변 보호를 위해 태권도 사범들을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철 다음으로 부상한 인물이 이영란이다. 그는 2010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용철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의 맏딸로 아버지가 죽은 뒤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양딸이 됐다. 황병서는 이용철이 맡고 있던 핵심 요직인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황병서는 현재 북한 권력 서열 2위다.

이영란은 장성택이 갖고 있던 핵심 돈줄인 노동당 54부를 손에 넣었다. 54부는 석탄 등 광물, 수산물을 중국에 팔아 막대한 외화를 주무르던 부서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김철이 이영란이 독점하고 있던 탄광과 어장의 이권에 군침을 흘리고 개입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그러자 황병서가 이영란을 돕기 위해 보위사령부(우리의 기무사령부 격)를 내세워 김철을 내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3일 중국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 북한 대표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던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아들 최현철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거부(巨富)로 꼽힌다. 대외 무역 등으로 돈을 버는 그는 미녀들을 끼고 다니며 외국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말 아버지 최룡해가 섹스 스캔들로 좌천된 전례를 기억하는 평양 주민들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며 수군거리고 있다고 한다. 최현철은 또 과거 평양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내고는 상대 운전자가 반체제 발언을 했다고 뒤집어씌워 총살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운전자가 평소 고지식하지만 마음은 착한 노(老)당원이어서 평양 시민들이 분노했다고도 전해진다.

북한 경제가 다소 나아졌다지만 장마당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평안남도 안주의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 사진 출처 미국의소리
북한 경제가 다소 나아졌다지만 장마당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평안남도 안주의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 사진 출처 미국의소리
복수의 북한 소식통들은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부모의 권세를 등에 업은 이런 ‘자녀 권력’에게 잘 보이려고 줄을 서는 돈주가 적지 않다”며 “이들과 친해지려면 최소 20만 달러(약 2억3600만 원)를 뇌물로 주어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권세는 늘 불안하다. 부모가 숙청되면 모든 부귀영화를 한순간에 빼앗기고 목숨까지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일 체제 말기 최고 부자로 꼽혔던 이제강 조직지도부 1부부장(2010년 사망)의 사위인 차철마와 최고 여성 부호로 꼽혔던 김일철 전 인민무력부장의 딸(이름은 알려지지 않음)은 무대 중심에서 밀려났다.

북한 최고 간부들이 김정은 말에 절대 복종하는 것은 최소한 무난하게 은퇴해야 가문의 부를 지킬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에겐 체제 수호가 곧 자신들의 생존과 기득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 빈부 격차의 심화

김정은 체제 들어 권력층의 부는 증가하는 반면 사회 전체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 장사나 친지 방문 등의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 100명을 면접 조사한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98명이 “빈부 격차가 크다”고 답했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4년간 탈북한 지 1년 미만인 북한 주민 600여 명을 대상으로 매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북한 최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북한 돈 90만 원(약 13만 원)으로 최하위 20%의 월평균 소득 2만 원(약 2900원)의 45배다. 동일한 격차가 5.4배에 불과한 한국보다 훨씬 더 큰 빈부 격차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78.9%가 북한에서 가장 잘사는 직업으로 중앙당 간부를 지목했고 14.3%가 두 번째로 잘사는 직업으로 법 집행 기관 간부를 꼽았다. 반면 가장 못사는 직업으론 57.1%가 농민을, 21.6%가 노동자를 각각 선택했다.

평양과 지방의 격차, 지방 간의 격차도 급속히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평양을 제외하고 북한에서 가장 잘사는 지역을 묻는 질문에 35.4%가 평안남도, 22.1%가 함경북도, 16.7%가 평안북도, 15.5%가 양강도를 꼽았다. 평양을 둘러싼 평남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 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반면 가장 못사는 지역으로는 강원도(36.7%)와 황해남북도(24.3%)가 꼽혔다.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까진 곡창지대인 황해도의 생활 수준이 함경북도와 양강도보다 높았지만 지금은 평양 또는 중국과 얼마나 가깝고 먼가에 따라 잘사는 지역과 못사는 지역이 갈리고 있다.

○ 부정부패의 만연

강 교수의 설문조사에 응한 북한 주민 100명 중 90명은 ‘일을 해결하기 위해 뇌물을 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만큼 뇌물 주고받기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북한 주민들은 “뇌물을 주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돈 대신 담배를 뇌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대답했다. 북한에선 현재 1보루(10갑)에 10위안 상당의 가치가 있는 ‘고양이’ ‘고향’ ‘금강산’ 같은 담배가 뇌물 대용으로 인기가 있다. 또 중국 방문 허가를 얻으려면 공식적으론 50달러를 국가에 내야 하지만 실제론 300∼1000달러의 뇌물을 줘야 한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가 확산되면서 안전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5월 발생한 평양시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 사고는 돈과 권력의 유착, 개인의 욕망이 어우러져 빚어진 참사였다. 부정부패가 비리를 낳고, 비리가 부실 공사를 낳은 것이다.

황금만능주의 확산에 따른 사기 범죄도 해마다 크게 증가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으로 나온 평양 주민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여성이 주도하는 사기, 절도와 매춘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지난해 평양에선 여성 범죄만 전담해 수사하는 단속반이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 글 싣는 순서

<1> 조기붕괴 예상 깬 정치권력
<2> 떠오르는 ‘붉은 자본가’
<3> 북한 시장화의 그늘
<4> 외부로 분출되는 북한의 욕망

주성하 zsh75@donga.com·김정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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