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김영호의 출마 저울질, 靑만 몰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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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장에서 김영호 감사위원이 내년 총선에서 ‘진주을’ 지역구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감사원 간부들도 놀랐을 것이다. 감사원의 현직 차관급 공무원이 정계 진출 의향을 공개 석상에서 거론한 것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뻔뻔한 정치 커밍아웃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정계 진출을 많이 한다. 그러나 감사원 출신으로 정계에 진출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박정희 정부 때 군 출신으로 최장수 총무처 장관을 지낸 고 이석제 전 감사원장이 5공화국 출범 전까지 1년 7개월간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 때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도 있다. 그나마 두 사람 모두 외부 출신이다.

이회창 전 대표는 1996년 총선 직전 신한국당에 영입될 때 측근인 황우여 변호사(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를 전국구 당선권에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전국구 16번을 받아 국회로 진출한 황 부총리가 감사위원을 지냈다. 황 부총리는 이 전 대표가 대법관에서 감사원장으로 갈 때 따라갔다. 그러나 김 감사위원과 같이 감사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정계로 진출한 예는 없다.

감사원에서 일하는 공직자는 정치권과 친해서는 안 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감사원은 국가의 세입세출 결산검사,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회계감사, 공무원의 직무감찰 업무를 맡고 있다. 행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추상같은 자세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감사원법에도 ‘인사와 직무의 독립성’을 선언하고 있을 정도다.

김 감사위원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감사원의 2인자인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관가의 친박 실세’로 통한 그는 2년 3개월간 최장수 사무총장 기록을 세웠다. 김 감사위원은 국감장에선 “(출마를) 고민 중이다. 지역에서 출마 요구가 있다”고 얼버무렸지만 감사원 내부에선 출마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본다.

김 감사위원이 공을 들이고 있는 진주을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이 3선에 성공한 곳이다. 진주고 동기동창인 두 사람이 “세게 붙었다”고 지역에선 뒷말이 무성하다. 지역구를 놓고 당내 경선을 벌이면 현역 의원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 김 감사위원은 지인들에게 “내가 그냥 나왔겠느냐”고 자신감을 표했다고 한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민정라인 검증 제대로 했나

김 감사위원의 출마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은 관가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총선에 나오려면 선거일 3개월 전에는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4, 5개월 재직할 사람을 감사위원에 임명한 것은 총선 출마를 위한 배려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중립 논란까지 빚을 수 있는 무리한 인사를 단행한 박근혜 대통령은 전말을 알고 있을까.

감사원 사무총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업무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김 감사위원도 우병우 민정수석이 민정비서관일 때부터 호흡을 맞췄다. 민정라인이 검증의 기본인 평판조회조차 소홀히 하는 부실 검증을 했을 수 있다. 그 반대로 출마 계획을 알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면 중대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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