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안중에 없는 오만국회, 보신주의 빠져있는 관료집단
교육 등 수많은 과제들, 정책 의제로 선정조차 안돼
日 하급무사들이 막부 타도, 부국강병-근대화 이뤄냈듯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국가운영체제를 바꿔야 한다
올해 5월 일본을 갔다. 배낭을 메고 메이지(明治) 유신의 역사를 따라 걸었다. 요시다 쇼인,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 일본의 영웅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없이 불편한 그 이름들을 따라갔다.
걷고 또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메이지 유신의 무엇이 페리 제독에게 굴복하여 말도 안 되는 불평등 조약을 강요당했던 이 형편없는 나라를 불과 몇십 년 만에 ‘대동아공영’의 헛된 꿈을 따라갈 정도로 강하게 만들었을까.
먼저 그 하나, 세력 교체였다. 유신을 주도한 세력은 막부의 무능함에 분노한 하급무사들이었다. 유신이 성공하면서 이들은 역사의 새로운 주체가 되었다. 반면 쇼군과 다이묘(大名) 등 막부를 구성했던 세력들은 권력의 장으로부터 멀어졌다.
또 하나, 거버넌스 구조 즉 국가운영체제의 개편이었다. 유신 세력은 곧바로 막부체제와 봉건체제를 무너뜨렸다. 대신 중앙집권체제와 관료체제를 확립했다. 또 의회 제도를 도입하고 스스로 그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렇게 세력이 교체되고 거버넌스 구조가 변하면서 정책적 의제도 변했다. 부국강병과 근대화, 그리고 전국을 단위로 한 산업의 문제 등 막부 때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문제들이 의제로 떠올랐다. 우여곡절이 있기도 했지만 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갔다.
왕과 막부가 분리되어 있던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과 달리 조선에서는 왕이 곧 정부였다. 나라가 망할 것이라 외치면서도 서로 모여 세력을 형성할 수는 없었다. 자칫 역모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력 교체도, 거버넌스 구조의 변화도 없었다. 당연히 정책의제도 변하지 않았다. 딱한 조선, 가슴이 저려왔다.
문득 오늘의 우리가 생각났다. 지금의 거버넌스 구조는 건강한가? 아닌 것 같다. 이미 소개한 적이 있지만 행정부에서 시작한 법안이 국회를 거쳐 집행에 이르는 데 평균 35개월, 거의 3년이 걸린다. 또 싸움이 일상인 국회에 연간 상정되는 법률안이 5000건 이상, 어떤 국회도 소화해 낼 수 없는 양이다. 여기에 관료 또한 움직이지 않는다. 수많은 규정과 지침들이 밟으면 터지는 지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의제조차 되지 못한다. 의제가 된다고 해도 제때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안전 문제나 노동 문제 등이 그러했고, 산업 구조조정의 문제와 교육 문제 등이 그렇다. 때로 빤히 아는 문제를 그냥 보기만 하고 있다.
고쳐야 한다. 이 잘못된 구조를 고치지 않고는 국가가 바로 설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고치느냐다. 유감스럽게도 그 책임을 지고 있는 기존의 정치집단은 이를 고칠 수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렇다. 우선 이런 부분에 관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 잘못된 구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국회의원들은 국회의 권한과 역할을 나누기 위한 어떠한 방안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싸움은 정말 부질없다. 어느 쪽이 집권을 해도 나라에 큰 도움이 될 일이 없다. 지난달 칼럼에서 이야기했듯 고장 나 잘 움직이지 않는 차를 두고 서로 자기가 운전하면 잘 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심각한 기만행위다.
결국은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 일본의 하급무사들이 세력을 형성하여 막부를 타도했듯이, 시민들이 세력을 형성하여 기존의 잘못된 거버넌스 구조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지역에서 영유아를 키우는 어머니들이 모여 그 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쓸 영유아 보육예산을 놓고 토론을 했다. 사업의 우선순위와 예산 배정의 기본원칙 등을 정한 후 이를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에 보냈다. 받은 쪽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 대부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시민회의들이 수없이 만들어져 지방정부의 운영에 대한 토론을 해가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국적 사안을 토론해 가면 어떻게 될까? 거버넌스 구조와 관련하여 이보다 더 큰 혁명은 없을 것이다. 마침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이를 운영하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다. 노력과 비용이 그만큼 적게 든다는 말이다.
여의도 정가의 부질없는 싸움,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나. 이제 역모가 될까 두려워 못 나서는 세상도 아니다. 시민의 세력화, 이를 통한 거버넌스 구조의 개혁,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정책의제의 변화, 이런 혁명을 꿈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