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나흘간 7번 악수 다시 불붙은 대망론
비박-친박 공천 주도권 경쟁 앞두고 ‘반기문 카드’ 꺼내 보이며 기선 제압?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대선)에 나설까. 한동안 잠잠하던 반기문 대망론이 다시 불붙었다. 유엔총회와 유엔 개발정상회의 참석차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뉴욕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9월 25일부터 나흘간 뉴욕에 머문 박 대통령은 반 총장 관저에서 만찬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고, 이후 주요 일정마다 반 총장과 함께했다. 국내에서 박 대통령과 대면접촉이 쉽지 않다는 점에 비춰보면 국내 언론들이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나흘 동안 7번 만났다’며 잦은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고 대서특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주 만난 것 못지않게 공개연설 등을 통해 반 총장과 박 대통령이 주고받은 메시지도 심상치 않다. 반 총장은 9월 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박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전파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새마을운동으로) 제가 살던 마을과 나라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중략) 한국의 개발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는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합니다.”
반 총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국내 새마을운동의 성과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자부심을 느꼈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외교의 달인인 반 총장은 단 두 마디 말로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뜻을 동시에 전했다. 직업 외교관다운 뛰어난 외교적 수사(修辭)가 아닐 수 없다.
반기문 테마주 급등
9월 30일자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반 총장이 연설을 마치자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고, 옆자리로 돌아온 반 총장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반 총장에게 전한 ‘감사’의 의미는 중의(重義)적이다. 박 대통령 자신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반 총장에게 답례 차원에서 인사를 건넨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자신의 아버지가 이룬 성과에 자부심을 느꼈다는 반 총장에게 감사의 뜻을 건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을 좇는 이들이 권력의 향배를 먼저 냄새 맡는다고 했던가. 뉴욕에서 불어온 반기문 대망론에 한국 주식시장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추석 연휴 뒤 닷새 만에 문을 연 9월 30일 주식시장에서 이른바 반기문 테마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반 총장의 동생 반기호 씨가 부회장으로 근무하는 ‘보성파워텍’ 주가는 9월 30일 하루에만 15% 이상 올랐고, 최승환 대표가 유엔환경기구 상임위원이란 이유로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되는 ‘한창’ 역시 오전 한때 10% 이상 급등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정치인 테마주는 투기세력이 단기적 이득을 노리고 주가를 급격히 올리는 경우가 많아 개인투자자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반기문 테마주가 주식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은 반 총장의 차기 가능성을 시장에서 그만큼 높게 보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차기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2%에 머문 차기 주자에게 테마주가 형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다.
한 증권 전문가는 “정치인 테마주는 마을에 잔치가 열리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각설이와 유사하다”며 “테마주를 형성한 정치인에게 조그마한 호재라도 생기면 금세 끓어올랐다 이내 사그라진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며 “잔치가 끝난 마을에 각설이가 남아 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임기 중반을 갓 넘긴 박 대통령이 반 총장과의 거리를 급격히 좁히며 반기문 대망론에 일조한 까닭은 뭘까.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 공천권과 연계해 해석하는 이가 많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비박)계가 ‘국민공천제 도입으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친박근혜(친박)계는 정권의 성공을 뒷받침할 인물이 총선에 나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총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 최근 전광삼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 춘추관장이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했고 신동철 정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 등 박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관들의 내년 총선 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친박 “우리도 주자 있다”
그러나 친박계 역시 임기 말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비박계가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것에 비해 친박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구심력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특히 총선 이후 ‘차기’를 도모할 주자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대표적 친박계인 윤상현 의원이 9월 중순 “친박 의원 가운데 차기 대선에 도전할 분들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일단 김무성 대표 견제용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에게도 차기 주자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친박계가 ‘차기 정권 창출과 무관한 불임계파가 아니다’라는 점을 은연중 강조했다는 점에서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방미 기간 중 박 대통령이 반기문 총장과 가까운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친박계가 차기 대선에 개입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측면이 있다”며 “다만 임기 중반을 갓 넘긴 대통령이 차기 주자 띄우기에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친박계가 느끼는 위기의식이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기문 대망론은 증권가에서 하루 사이 주가가 등락하는 정치인 테마주와 마찬가지로 아직은 유동적이다. 반 총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데다, 임기 이후 어떤 선택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 그러나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조기 낙마로 허무하게 무너진 ‘충청 대망론’을 반기문 대망론이 일정 부분 흡수할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 차기 대선 흐름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등 이른바 PK(부산·경남) 출신 정치인이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며 ‘PK 대망론’을 형성해왔다. 이른바 ‘PK 주자 전성시대’였다. 그에 대한 반발이 친박이 미는 충청 주자, 이른바 ‘충청 대망론’ ‘반기문 대망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반기문 대망론은 여론의 검증을 통과한, 자생력을 갖춘 대망론이라기보다 아직 정치공학적 상황의 산물이라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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