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5만 달러 품고 헬조선 탈출해 북조선 가서 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3시 00분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이보게, 젊은이. 여기가 헬조선 맞나.

목숨 걸고 찾아왔더니 하필 지옥이라니…. 왓다헬!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음(끄덕끄덕)…. 듣고 보니 참말 같구먼. 그럼 나와는 반대로 헬조선을 탈출해 북조선에 한번 가보실 텐가. 아무렴 지옥보다 못하려고. 한번 들어나 보고 판단해 보시게나.

일단 헬조선 탈출금 5만 달러만 준비하시게. 그 정도도 없다면 그냥 지옥살이 할 운명인 거야. 요샌 동남아 사람들도 몇 년이면 그 정돈 벌어 간다고 하더구먼. 서울선 방 한 칸 얻기 힘들어도 북조선에선 결혼도 할 수 있고, 집도 살 수 있고, 취직도 할 수 있다네.

북조선에 가면 ‘면죄부’부터 사시게. 올 7월부터 파는 건데, ‘김일성, 김정일 기부금’이라고도 하지. 돈줄 마른 당국이 10일인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일을 맞아 주민 돈주머니 털어먹느라 만든 것이네. 가격은 북조선 최고액권인 5000원권으로 2만 장, 즉 1억 원이네. 그리 놀라지 말게. 북에선 1달러가 8300원이니 한국 돈 1원이 북조선 돈 7원 정도라네. 1억 원은 1만2000달러쯤 되네.

돈을 바치면 ‘이 동무는 김일성(김정일) 기부금을 냈음을 증명합니다’ 따위의 글과 기부액수가 적힌 ‘애국상장’이란 종잇장 하나 줄 걸세. 김 씨 일가 우상화 사업에 기부하면 김일성 기부금 증서를, 김정은이 지시한 중요 공사에 기부하면 김정일 기부금 증서를 준다네. 효력은 같다니 아무거나 고르시게.

그리고 남쪽 주민등록증 크기의 휴대용 애국상장도 주는데, 이걸 꼭 갖고 다니시게. 이것만 보여주면 웬만한 죄는 다 용서가 되니까. 물정을 잘 몰라 좌충우돌 사고 치는 정도는 눈감아 주지. 다만 김정은을 욕한다거나 홧김에 사람 죽여도 효력이 있는 건 아니니 명심하시게. 기부금 3000만 원(약 3600달러)을 내면 ‘애국’자가 빠진 그냥 ‘상장’이라는 면죄부도 주는데, 약발은 많이 떨어지니 이왕 살 거면 1억 원짜리 사시게나.

어려서부터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평양에선 살기 위험하네. 지방 도시라면 8000달러로 3칸짜리 집은 살 수 있네. 가자마자 역사책에서 배웠던 가렴주구(苛斂誅求)란 것부터 바로 알게 될 걸세. 다음 날부터 인민반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문을 두드릴 거네. 아침엔 “동상 건설 지원금 내라”, 점심엔 “발전소 건설 지원금 내라”, 저녁엔 “수해복구 지원금 내라”라고 독촉할 걸세. 그게 북조선 일상이니 빨리 적응하게나. 이걸 견디다 못해 도시에서 그나마 수탈이 덜한 깊은 산골로 도망가는 사람들이 요새 급증한다니 도시엔 빈집이 많아지고 집값도 떨어져서 좋은 기회일세. 자넨 돈이 많으니 걱정할 필요 없네. 걷으러 올 때마다 1달러 정도 주면 되네. 면죄부 사고 집 사도 3만 달러는 남아 있지 않은가. 그 정도 조건이면 괜찮은 짝을 골라 결혼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네.

물론 밤이면 암흑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목욕조차 하기 힘들 거네. 허나 어차피 TV를 봐야 욕만 나올 거고 샤워 좀 못해도 지옥보단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취직이 필요하면 적당한 간부 자리 하나 사시게나. 면죄부 파는 세상인데 매관매직이 없겠나. 아직은 구한말처럼 군수 5만 냥, 관찰사 20만 냥 이런 식으로 딱 정해져 있진 않네. 머잖아 그리 되겠지만 자네에게 권할 자리는 높은 간부가 아니라네. 너무 높이 올라가면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확률이 높다네. 헬조선에서 열심히 학원만 다녔다면 남을 갈구고 돈 뜯는 실력은 어림도 없을 터. 양심이나 자책감 같은 게 남아 있다면 높은 자린 넘보지도 마시게.

안정적인 게 싫고, 도전을 해보겠다면 장사밖에 할 게 없네. 허나 3만 달러면 북조선 금수저하곤 비교가 안 되니, 자기 푼수 정도는 아시게. 금수저 쳐다봐야 제 명만 줄어드는 건 남이나 북이나 똑같다네. 장사 종목 고를 땐 헬조선 체험이 큰 도움이 될 거네. 치킨도 좋고 편의점도 좋네. 다만 휴대전화 가게는 허가가 까다롭네.

장사가 잘될지는 모르겠네. 북조선도 요즘 지독한 불황이라네. 경제는 마비됐는데 모두들 장사판에 뛰어드니, 판다는 사람은 많은데 산다는 사람이 없다는군. 3만 달러 날리는 건 일도 아닐세.

반드시 명심할 건 1만 달러는 꼭 남기시게. 거기가 더 지옥 같다면 다시 도망칠 비상 탈출금은 있어야 하니까.

어떠신가. 5만 달러로 꿈꿔보는 북조선 은수저급 삶이. 그것도 끔찍하다면 해줄 말이 없구먼. 금수저 되는 법은 하늘이 알지 나는 모르네.

물론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닐세. 요즘 남북이 통일하면 대박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더구먼. 그거나 한번 꿈꿔 보세나. 둘이 합치면 대박반도가 될지, 지옥불반도가 될지 난 모르겠네. 그래도 뭐가 두렵겠나. 더 떨어질 곳이 있다면 여기가 헬조선이 아닌 거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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