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역사교과서가 국정으로 바뀌면 교과서 편찬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 도서는 교육부가 편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필요한 경우 연구기관이나 대학에 위탁할 수 있다. 교육부는 역사에 전문성이 있는 국가 기관인 국편이 국정 역사교과서 위탁 기관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국편의 인력 구조와 한정된 시간을 감안할 때 국편이 충실한 역사교과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나 역사 교사들 사이에서 의문이 많다.
국편의 설립 목표는 ‘대한민국 전 시대 역사 자료를 수집, 정리, 보관하고 가치 있는 사료를 출판하여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공헌하는 것’이다. 방대한 업무를 처리하는 국편의 현재 편제 정원은 85명에 불과하고, 이 중에서도 연구 인력(연구관·연구사)은 47명이다. 14명의 국편 위원 가운데 5명은 서양사 미술사 등 한국사 이외 전공자다. 나머지 9명 가운데 교과서 기술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근현대사 전공자는 개항기와 현대사에 각 1명이다.
교과서 집필이 국편의 본래 업무가 아닌 데다가 인력 여유도 없는 만큼 국편은 교과서 집필진을 외부에서 충원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와 국편은 국정 체제가 확정되면 보수와 진보 진영을 아울러 20∼40명의 집필진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각 대학 역사학과 교수들과 역사과 교사 단체 등이 잇달아 국정화 반대를 표명한 상황에서 국정 교과서 집필에 응할 전문가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국편이 개최한 ‘역사과 편찬 준거 개별 시안 공청회’에서 현행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만드는 연구진이 국정화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만 봐도 역사학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국편이 기존에 역사교과서의 검정을 담당하면서 부실 검정으로 인해 교과서 오류 논란을 키웠던 전례 때문에 국편의 교과서 편찬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일고 있다.
2013년 8월 국편이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검정 합격을 통보한 직후 교학사 교과서에서 사실 관계와 자료 출처 등의 오류가 무더기로 발견됐고, 이어 나머지 7종 교과서의 오류도 잇달아 지적되자 교육부가 직접 나서서 829건의 수정 명령을 내렸다. 6명의 검정위원이 4개월도 안되는 단기간에 8종의 교과서를 검정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다.
이에 앞서 2008년 교육부는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6종의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편향성 논란이 일자 253건의 수정 권고를 내리는 동시에 국편으로 하여금 집필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했다. 이에 따라 국편은 2011년에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만들고, 2012년에 세부 검정 기준까지 만들었다. 이런 절차를 거쳤는데도 부실 검정이 벌어진 것이다.
교육부가 교과서 수정을 주도하고 집필진과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국편의 존재감은 약해졌다. 더욱이 2013년 부실 검정 파동 이후에 국편은 추가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국편이 검정도 아닌 국정교과서를 주도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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