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법에서 정한 시한인 13일 획정안을 제출하지 못했다. 내년 4월 총선까지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선거의 기본 중의 기본인 몇 개 지역구에서 선거를 치를지에 대한 합의조차 이루지 못했다. 여야 정치권 역시 당내 경선룰을 놓고 극심한 계파 갈등에 휩싸여 있어 20대 총선은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인 김대년 선거구획정위원장은 13일 국회에서 “법정기한까지 소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선거구 획정을 위한 인구산정기준일(올해 8월 31일)과 지역 선거구 수(244∼249석)도 범위를 결정했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든 합리적 안을 도출해야 할 획정위원회가 위원 간 의견 불일치에 따라 합의점을 찾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은 이어 “선거가 차질 없이 치러지도록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치적 결단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획정위 합의 불발이 선거구 획정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하지 못한 정치권의 극심한 정쟁 탓이라고 에둘러 비판한 것.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획정위는 획정안이 효력을 발생하는 날까지 활동은 이어간다. 하지만 획정위원들이 4 대 4로 나뉜 상태에서 여야 대리전을 펼치고 있는 탓에 합의안 도출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날 대국민 사과문 발표는 사실상 활동 중단 선언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당장 획정위는 향후 전체회의 일정도 잡지 못했다.
결국 여야가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석수, 농어촌 지역구 배려 방안 등 획정기준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추후 논의는 불가능해 보인다. 획정안 마련을 위한 ‘공’이 다시 정치권에 넘어오게 된 셈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여야의 선거구 획정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황 총리는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가 바람직하지 않으냐는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의 질의에 “형평성 문제나 최근 논의가 된 헌법재판소 결정(선거구 인구편차 ‘2 대 1’) 취지를 반영하는 등 국회에서 논의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황 총리는 인구수만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의 지적에는 “농어촌 선거구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한지 같이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해결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 셈이다.
여야 논의도 평행선을 달렸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더라도 지역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여당은 지역구 의석수를 259석과 250석으로 한두 개의 안을 확정짓고 내부적으로 회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비례대표 의석은 절대 줄일 수 없다고 맞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비례대표(의석수)를 줄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비례대표를 한 석도 줄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문제”라고 화살을 야당으로 겨눴다.
반면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의의 문을 열어주면 비례대표 의석수 논의의 문을 열겠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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