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최대 장애물은 ‘문명격차’ 통일 후 연방제로 가야”

  • 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16일 13시 26분


[신동아 10월호/대한민국號 70돌 신동아-미래硏 연중기획/ 국가미래전략을 묻는다]
북한 민주화 운동가 김영환
● 중국에 ‘통일 한반도는 중립’ 확신 줘야”
● 美·中 사이 중립모델, 韓 국익 배치 안돼
● 北 경제난 호전…과거 잣대 분석 말아야
● 北 주민, 체제불만·反체제의식 약해

그는 철학·사상형(型) 인간이다. ‘혁명’을 꿈꾸지 않았다면 ‘이데올로그’로 남았을 것이다. 그의 저술을 읽지 않고, 그와 말 섞어 토론해보지 않으면 그를 오해하기 쉽다. 왼쪽 극단에서 오른쪽 극단으로 이동했다는 식의 ‘띄엄띄엄 인물평’이 대표적이다. 그는 사람됨을 갖춘 철학·사상가다.

김영환(53). 서울대 법대 82학번. 1986년 팸플릿 ‘강철서신’을 썼다. ‘주사파 대부.’ 운동권에 반미친북 분위기를 확산했다.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이듬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창당했다. 북한의 실제에 환멸을 느껴 1997년 민혁당을 해체했다. 지금껏 북한 민주화 및 인권 운동에 천착했다.

“신념에 반해 행동한 적 없다”

그는 30년 넘게 현장에서 평양을 들여다본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다. 이따금 페이스북에 남기는 북한 현안 분석에 놀랄 때가 있다. 근거가 살아 있고 논리가 날카로운 데다 훗날 적확한 것으로 확인돼서다. 9월 9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그를 만났다.

▼ 1980년대 주사파의 상직 격인 인물입니다. 1990년대 말 북한 민주화 운동가로 변신한 것으로 압니다. 전향이다, 변절이다, 노선 전환이다, 말이 많은데요.

“기존에 가진 진보관이랄까, 역사 발전에 대한 생각이 사회주의 붕괴를 보면서 흔들렸습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을 보면서 한국에서 혁명가로 사는 게 옳으냐 하는 회의도 들었고요. 북한 인권 상황이 극단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을 다양한 경로로 확인, 재확인했습니다.

변절은 확실히 아닌 게, 신념에 반해 행동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 문제는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북한의 진실을 깨달은 것이고요. 민중의 자유와 평등, 해방을 위해 투쟁해온 이들이 민중의 인권을 짓밟는 북한을 지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죠”

▼ 북한의 주체사상과 황장엽(1923~2010) 씨의 ‘인간중심의 철학’은 다르다는 견해를 밝혔더군요.

“오랫동안 연구해본 결과, 북한 주체사상은 논리적 완결성을 갖지 못한 것 같아요. 김일성식 민족공산주의, 황장엽 선생의 주체철학, 수령론이 뒤섞였습니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계급투쟁론이 연결고리에 따라 논리적으로 이어집니다.

민족공산주의, 주체철학, 수령론은 그렇지 못해요. 황장엽 선생이 만들어 놓은 뇌수론(수령은 사회의 뇌수) 등이 연결고리가 되기는 하는데, 억지로 끼워 넣었다고 하겠습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인간의 정신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는데, 중세의 관념론을 배척하고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황장엽 선생의 주체철학은 과도한 유물론을 견제하고자 인적인 요소,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중요한 점은 북한에서 주체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김일성 일가를 신격화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요.”

▼ 황장엽 씨의 주체철학, 그러니까 인간중심의 철학이 본인의 철학·사상적 견해와 비슷합니까.

“기본적으로 거의 같다고 봅니다. 다만 황장엽 선생은 1940~50년대에 철학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셔서인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론에 상당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계급론과 역사발전 5단계(원시공산사회-고대노예제사회-중세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공산주의사회)를 비판하는 연구를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황장엽 선생과 생각이 다르기는 한데, 철학의 근본은 비슷합니다.”

“서구 분류표로는 ‘진보’인데…”


▼ 7월 31일 작고한 김수행 서울대 명예교수(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에 대한 진보 진영의 추모 분위기가 상당했습니다. 역사발전 5단계에 대해 현재는 어떤 견해를 가졌습니까. 보수, 진보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인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역사발전 5단계 주장에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마르크스 이론이 그 나름의 성과가 있었고, 현실에서도 일부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는 하지만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을 올바르게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특히 동아시아 역사를 역사발전 5단계에 억지로 끼워 맞추느라 장황한 이론이 덧붙여지곤 했습니다. 원시공동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문명 이전의 원시 사회는 존재했다고 봅니다. 원시 사회와 문명 사회는 전근대와 근대로 나뉩니다. 저는 원시, 전근대, 근대 3단계로 문명 발전을 나눠요. 마르크스가 밝힌 봉건사회는 보편성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해서는….

“인간은 진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아무리 진화해도 완전해질 수 없어요. 인간이 완전해진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완전해지는 것은 진화를 멈추는 것인데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 품에 가진 철학·사상적 및 정치적 견해를 평가할 때 본인이 보수라고 생각합니까, 진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 사회 기준으로는 굉장히 애매한 사람인 것 같아요. 서구에서 기준으로 삼는 안락사, 낙태, 총기 소유, 다문화 포용 같은 사회적 문제 분류표를 보면 제 생각이 진보와 거의 일치하더군요. 시장과 안보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보수로 분류될 여지가 많겠고요. 급진적 혁명이 아닌 점진적 변화를 지향하는 측면도 보수라고 볼 수도 있을 터인데, 그렇다고 한국 사회의 진보라는 분들이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북한을 보편적 인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것은 진보라고 하겠는데, 한국에서 그 반대로 분류되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종북보다 친북이 더 문제”


▼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해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더욱 평등한 사회,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의 일반적 특징 아닐까요.

“완전히 이상적인 사회라는 건 있을 수 없지만, 현실 사회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계획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 집행이 급진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시민운동도 마찬가지고요.

정부에서 하든, 민간에서 하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험적 노력은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실험이 축적되면 자산으로 남을 겁니다.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 실험은 반대합니다.”

▼ 민혁당을 건설해 지도했습니다. 함께 활동한 이석기 씨는 내란선동죄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석기 씨가 헤게모니를 가졌던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됐습니다. 종북 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종북 세력이 굉장히 많은 것처럼 알려졌지만 20년에 걸쳐 꾸준히 줄었다고 봅니다.

마지막 종북 세력이 이석기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였다고 생각해요. 이석기가 구속되면서 구심점과 동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종북은 정신문명 발전과정을 보더라도 용납하기가 어렵습니다. 1980년대처럼 정보가 제한돼 있다면 모를까, 인민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정권을 추종한다는 게…. 지성의 극심한 마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 종북은 이석기 씨 사태로 실체가 알려지면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친북’이라고 표현할까요. 반미친북적 사고를 갖고 정치·사회활동을 하는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들이 더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종북은 북한에 심취해 좌우 가리지 않고 그것에만 매달리거든요. 친북이라는 표현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람들은 좌우를 살펴봅니다.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알면서도 정치적 입지와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스탠스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직하지 못하다고나 할까요.”

“한·중 이해관계 상충 없다”

▼ 9월 2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변화하는 동아시아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외교 전략의 핵심 중 하나가 친중정책이라고 봅니다. 친중정책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얻을 것은 뭐라고 보는지요.

“북한 문제를 해결해 한국 주도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장기적 목표가 돼야겠지요. 북한이 위협이 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중국은 한국과 북한 둘 다 우호국가로 만들려고 할 겁니다.

북한이 미국 세력을 견제하는 완충지대 노릇을 하고 있으나 마음에 안 드는 완충지대일 겁니다. 말썽도 자주 일으키고 중국의 국제적 위신도 떨어뜨립니다. 낙제점의 완충지대라고 하겠습니다.

중국의 국익과 이해관계로만 보면 가장 좋은 것은 한국 주도로 통일된 한반도가 북한보다 고급스러운 완충지대가 되는 겁니다. 한국의 국익, 이해관계를 봅시다. 한국 주도로 통일을 이루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화 노선을 선택한다? 그것이 우리의 이해관계에 크게 배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처지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겠으나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은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따라서 한중관계의 장기적 이해관계가 상충되거나 배치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아직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유지되고 주한미군이 주둔하면서 통일한국이 미국에 경도된 정책을 펼치는 상황을 중국은 우려합니다. 한국은 단기적으로 중국이 북한 편만 드는 것을 걱정하는 데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통일 후 한반도에 강압적인 정책을 펴지 않을까 우려할 것이고요. 이런 불신 탓에 서로 눈치만 보는데, 통일 이후 중국이 한국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통일로 가는 과정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고, 약속했다고 해서 지켜진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확신은 없더라도 어느 정도의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면 한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근접할 수 있습니다.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임계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고요.

중국은 통일한국이 어느 정도 중립적인 완충지대 역할을 하리라는 믿음을 확실히 갖고, 한국은 중국이 통일 과정에서 우리를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임계점입니다. 그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대중정책을 아주 긍정적으로 봅니다.”
현실에 기반 둔 외교

▼ 친중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습니다.

“중국에 통일 이후 한국이 친미 일변도 정책을 펴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완전 중립은 아닐지라도 미국에 6, 중국에 4 혹은 미국에 5, 중국에 5 정도…. 그러니까 미국에 약간은 가깝지만 중립을 취할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해요. 중국 처지에선 북한이 골치 아픕니다. 한국이 중립만 취해준다면 한국 주도로 통일되는 게 중국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돼요. 시진핑 정부는 이런 가능성을 자주 내비쳤습니다. 시진핑 주석 임기 내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하는 쪽으로 중국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 보수진영 일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이 자유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이라는 가치에서 벗어났다고 봅니다. 한미동맹을 균열시키고 있다고도 여기고요.

“국가 간 외교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일체화해 접근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미국은 문화대혁명의 모순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중국에 접근했습니다. 엄청난 사람이 죽고 고문당할 때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겁니다. 비판적으로 볼 순 있겠죠. 비판할 수는 있으나 외교 정책을 보편적 가치와 지나치게 일체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인권,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워 중국과 거리를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요.”

“미국 개입 용인했듯…”


▼ 작가 복거일 선생은 ‘신동아’ 이 시리즈 대담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은 ‘민주주의’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외교를 펼치면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글쎄요. 보편적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외교는 현실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복거일 선생처럼 민간에서 중국의 인권, 민주주의 문제를 계속 제기해야죠. 저만 해도 중국 정보기관에서 고문을 받고 중국 감옥에서 수감 생활도 했지만, 국가의 외교는 달라야 합니다.”

그는 2012년 중국에서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공안에 붙잡혀 114일 동안 억류돼 고초를 치렀다.

▼ 김동길 베이징대 교수가 최근 “한국 경제가 중국에 심하게 의존하는 상황이어서 중국이 기침하면 감기 정도가 아니라 중환자실에 가야 한다. 따라서 중국이 한국의 외교 정책을 조정할 지렛대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반도가 중국의 세력권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게, 중국 시장이 큽니다.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멕시코가 경제의 압도적인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경제적으로 의존하다보면 정치, 사회 등 다른 부분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죠.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하면서라도 중국 의존도를 낮출 것인지, 앞으로도 중국 시장에 의존할 것인지 말입니다.

한국인 중 과연 몇 퍼센트가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려고 할까요. 어느 수준까지 중국으로부터 영향 받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강압이나 지나친 간섭을 수용해서는 안 되겠죠. 어느 정도는 우리가 미국에 용인한 것처럼 중국에도 용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 박근혜 정부가 친중정책에 나선 것은 중국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진함으로써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국가예요. 그런데 중국을 통하면 세계의 물품을 수입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향해 물품을 수출하지 않아도 돼요. 북한 수준의 경제 규모에서는 중국 한 나라에만 수출해도 됩니다. 중국은 북한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에요.”

북한 내 민주화 운동

▼ 러시아도 있죠.

“아니에요. 러시아가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지 이모저모를 연구해봤는데, 불가능할 것 같아요. 러시아는 극동에 대한 의지가 약합니다. 석유 같은 것을 대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투자, 교역에서 중국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쪽이군요.

“그렇죠. 구조가 그래요.”

▼ 2012년 중국에서 검거될 때까지 북한 민주화 운동을 했습니다. 성과와 한계를 말씀해주시죠.

“한계부터 말씀드릴게요. 북한은 과거보다는 나아졌으나 나라 전체에 아주 촘촘한 감시망이 깔렸습니다. 작은 사안이라도 적발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하게 처벌합니다. 가족에까지 화가 미치고요. 처음 시작할 때 예상했으나 활동하면 할수록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를 갖고 활동을 시작한 북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 공포감에 떠는 겁니다.

비합법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다 초보자예요. 비밀리에 사람을 조직하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지하활동의 보안 수칙에도 서투르고요. 4~5년 활동하면 베테랑이 됩니다. 북한, 중국을 비밀리에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쉽게 하고요. 이렇게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 혁명적 열정으로 뭉쳐 있다가도 어느 날 공포가 밀려와 한국행이라는 현실적 선택을 한다든지, 북한에서 그냥 평범하게 산다든지 하게 됩니다. 뛰어난 활동가가 감시망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서 한계를 절감했죠.

성과는, 희생됐거나 한국행을 선택한 이들을 제외한 사람들이 북한에 눌러앉아 있다는 겁니다. 우리와 연계가 없더라도 북한에서 나중에 역할을 하겠죠. 연락을 다시 취해 지원할 수도 있고요. 중국에서 우리의 교육을 이수했으나 못하겠다고 그만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께 ‘생각이 바뀌면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죠. 이런 분이 무척 많습니다. 여전히 북한 내부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는 북한 내부에 민주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 결성한 민혁당 같은 ‘반정부 지하조직’을 꾸리려 한 것이다. 2012년 공안에 체포된 것은 중국 내에서 북한인을 교육하는 등의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 북한에서 활동하는 이들 간에 횡적인 연계도 구축했습니까.

“그건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죠. 한 사람 걸리면 줄줄이 다 잡혀갑니다.”

北 경제난 시기 관점의 오류

▼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보수우파는 과도하게 정치적 인권을 강조하고, 진보좌파는 과도하게 인도적 지원을 중심에 두는 것 같습니다. 북한 주민 처지에서는 정치적 인권뿐 아니라 생존권적 인권도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북한은 정치적 인권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최악이기에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기근 시기에 많은 사람이 굶어 죽은 것을 보면 생존권적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북한 경제 사정이 지속적으로 개선돼왔습니다. 최근 7~8년 동안 굶어 죽은 사람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1990년대 경제난 시기의 관점으로 북한의 생존권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경제난이 해소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습니다. 부유한 사람은 소득이 엄청나지만 가난한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해요. 필요한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이들을 타깃으로 한 구호활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수, 진보 모두 경제난 시기의 관점으로 현재를 들여다보는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김정은 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어떻게 봅니까.

“김일성, 김정일은 나라는 망쳐놨으나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데는 탁월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 독재에 탁월한 자질이 있대서 김정은도 그렇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2대에 걸쳐 독재에 자질을 갖는다는 것도 무척 낮은 확률일 겁니다.

김정은이 비슷한 능력을 가졌는지에 의문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공포와 포용을 아울러 균형을 맞췄습니다. 김정은의 행태는 균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어요. 별을 뗐다 붙였다…말은 못해도 속으로 굴욕감을 얼마나 느끼겠습니까.

장담하긴 어렵지만 북한 체제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일반 주민이 가진 불만이나 반체제 의식은 약합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호전된 것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 한반도 통일 전략은 어떠해야 할까요.

“김정은 정권이나 김정은 정권에 준하는 대체 정권과 협상해 통일을 이루는 것은 1%의 가능성도 없다고 봅니다. 북한 체제 붕괴가 통일의 전제 조건이 될 수밖에 없어요.

김영환(오른쪽) 씨는 9월 9일 대담에서 “통일 한반도가 중립을 취하리라는 믿음을 중국에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환(오른쪽) 씨는 9월 9일 대담에서 “통일 한반도가 중립을 취하리라는 믿음을 중국에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상에 의한 통일 불가능”


내용적으로는 흡수 통일적인 요소가 많겠으나 100% 흡수 통일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 체제 붕괴 직후 시차 없이 통일을 이뤄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중국의 지지를 얻어내야 하고요. 북한의 엘리트가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 주도로 통일을 이뤄내는 형태일 수밖에 없지만 북한의 시스템과 엘리트를 존중해야 합니다. 완전히 흡수된다는 의식을 북한 주민들이 가져서는 안 돼요.

동·서독의 예에서 보듯 사회주의, 자본주의라는 다른 체제에서 산 것은 길지 않은 시간에 극복할 수 있으나 문명적인 차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문명 발전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남북한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소 20~30년은 시스템이 분리돼야 해요. 연방제 형식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통일 과정을 연방제 형식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 협상으로 이뤄지는 통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통일 이후 국가 운영은 연방제가 합리적입니다. 중국-홍콩식 2체제 형식도 장점이 많으나 북한 주민의 주권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남북한이 같은 권리를 갖는 형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통일 과정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문명의 격차이고, 통일 한반도는 연방체제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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