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1주일
“집필 거부”vs“도입 찬성” 학계 갈등… 시민단체까지 찬반 시위로 대립
12일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대한민국은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부와 일부 보수층이 국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대다수 역사학계 교수들과 진보 성향 단체 등에서는 국정화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여기에 국정화 논쟁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져 갑론을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전국 주요 대학 역사학 전공 교수들은 국정화 반대 성명은 물론이고 정부의 역사 교과서 집필 과정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또 한국근현대사학회와 한국역사연구회 등 역사 연구단체들도 잇따라 집필 거부를 선언하고 나섰다. 여기에 서울대 고려대 교원대 등 각 대학 총학생회와 역사학과 학생들도 대자보 등을 통해 국정화에 반대하고 나섰다. 반면 나승일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차관) 등 102명으로 구성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은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정화 방침에 찬성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며 대립각을 세웠다.
역사학계, 교수 사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대립은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시민사회로 확대됐다. 17일 시민단체인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중고교생과 대학생 등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화 반대 집회를 가졌다. 13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욕설을 하며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치권도 역사전쟁에서 비켜가지 않았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이념 투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는 데는 정치권이 한몫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야당은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교과서를 통과시킨)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18일 새정치연합 문 대표는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친일 교과서 반대 강남·서초 엄마들과의 대화’ 행사를 가졌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른바 ‘올바른 교과서’ 홍보 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각각 여론전에 나섰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내달 5일 국정화 확정고시를 하고, 집필진 구성이 이뤄지면 집필진 성향과 집필 기준 전망을 둘러싼 공방은 더욱 가열될 수밖에 없다.
매년 열리는 역사학계 최대 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관련해 교과서 집필 기준을 논의할 예정이다. 30, 31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소통’을 큰 주제로 ‘한국사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다룬다.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과 근현대사 서술’을 발제할 예정인 장규식 중앙대 교수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따른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 기준의 변화를 살펴 이번 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역사 발전에 퇴행하는 것임을 조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설 김태웅 서울대 교수는 “현행 집필 기준은 충분히 세밀하게 돼 있는 만큼 더 자세한 집필 기준은 필요하지 않다”며 “다만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기존 집필 기준을 보완, 개선, 안정화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