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국정화, 지금이라도 회군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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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책임 제대로 못한 채 집필자-교사 탓하는 정부여당
보편적 국민정서 무시한 채 좌편향 획일화 감싸는 야당
정부도 여야도 돌아가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공화국 정신으로 돌아가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권력이 무섭기만 했던 1980년대 중반, 교수들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강의하지 못했다. 그 사이 학생들은 스스로 모여 이러한 모순을 설명하는 급진 좌파이론들을 공부했다. NL(민족해방)이다 PD(민중민주)다 하는 것이 다 그런 것들이었다.

좌파이론을 학습한 학생들에게 교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헛된 논리나 궤변으로 ‘신식민지’와 ‘독점재벌’을 비호하는 프티부르주아? 대충 그 정도였다. 책상 위에 책도 노트도 올려놓지 않은 채 강의 중인 교수를 가소롭다는 듯 지켜보곤 했다.

교과서 국정화 논쟁 속에서 다시 그때를 생각한다. 지금은 곳곳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을 그 학생들, 그들을 급진 좌파이론으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교과서가 좌편향이어서? 아니면 그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좌편향이어서? 아니다. 교과서도 선생님도 오히려 그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을 이끈 것은 따로 있었다. 공정하지 못한 정치 경제 구조, 그리고 이를 책에도 강의에도 담지 못하던 현실, 그래서 학생들 스스로 또 다른 수업을 고통스럽게 준비해야 했던 그 억압적 현실이 그들을 그리 이끌었다.

잘 알다시피 학생은 교과서로만 배우지 않는다. 교과서로 하나를 배운다면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로부터는 아홉을 배운다. 무슨 말인가? 교과서를 국정으로 획일화하여 강제하기보다는 현실이라는 또 다른 교과서를 잘 쓰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다.

더욱이 지금이 어떤 때인가? 글로벌화 정보화와 함께 역사는 더 높은 다양성을 향해 흐르고 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여기에 국정화로 획일성의 둑을 쌓는다? 아서라. 다양한 역사인식은 큰물이 되어 범람할 것이고, 그 둑은 그 큰 물줄기 아래 초라한 모습으로 있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소위 ‘좌편향’ 교과서에는 분명 정부여당이 받아들이기 힘든 진보적 흐름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은 진보적 견해를 가지기 쉬운데, 바로 이들이 교과서의 집필 검증 채택을 주도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결과적으로 총 8종의 교과서 중 적어도 5종이 ‘좌편향’, 그 채택률은 90%에 가깝다. 보수 성향의 교과서는 단 1종, 채택률은 0%다. 지금의 검인정 체제로는 ‘좌편향’ 일변도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라. 문제는 검인정이냐 국정이냐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잘못된 과정 관리에 있다. 역사 교육의 목표에 대한 구속력 있는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참여자마저 다양하지 못하니 그렇게 된 것이다. 채택 과정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학부모가 참여하기는 하나 큰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과정 관리의 책임은 당연히 정부여당에 있다. 그래서 말한다.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을, 또 스스로 잘하면 될 일을 마치 진보 성향의 집필자들과 채택 교사들의 ‘숨은 의도’ 탓인 양 말하지 마라. 또 이를 문제 삼아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인 다양성을 해치려 들지 마라.

양비론이라 욕하겠지만 야당에도 한마디 하자. ‘좌편향’ 교과서에 좌편향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주체사상 부분만 해도 그렇다. 비판적 문구가 한두 줄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북한 측 입장을 길게 소개하는 것만 해도 ‘좌편향’이다.

국정화가 다양성을 해치니 반대한다고? 그것도 믿기 어렵다. ‘좌편향’ 5종이 90%, 또 다른 방향으로의 획일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편적 국민정서와 거리가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는 왜 문제의식이 없나? 그러니 다양화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좌편향’ 획일화를 꿈꾸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리고 스스로 물어봐라. 다양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단적으로 진보진영에서 보수 성향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게 이를 채택한 학교들을 압박할 때 어떻게 했나? 그것이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적이 있던가? 그러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반겼다면 지금 와서 다양성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정부와 여야 모두 돌아가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공화국의 공화정신으로 돌아가라. 여러 색깔의 다양한 교과서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게 되고, 정부와 여야 또한 현실이라는 교과서를 잘 쓰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정작 풀어야 할 문제는 뒤로한 채, 답 아닌 답을 놓고 싸우는 모습이 짜증스럽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역사교과서#국정화#좌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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