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5자회동 이후]
밀어붙이지만 ‘총선 역풍’ 걱정 큰 김무성
수도권-비박의원들 반발 목소리 커져 고심… 여론악화 우려 “KFX 책임질 사람 책임져야”
“역사 교과서에 엄연히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음에도 야당은 ‘읽어 보니 그러한 내용이 없다’고 하는데 서로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 중고교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 기가 막혀서 가슴을 칠 정도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3일 10·28 재·보궐선거 지원차 인천을 방문해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노동, 공공, 금융, 교육 개혁을 반드시 성공해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해 미래세대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야당이 국정화 논란으로 민생 챙기기를 가로막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김 대표는 유세 후 기자들과 만나 “교과서 문제는 교육부 차관의 고시로 끝날 문제다. 야당은 비판할 수 있지만 그 행정은 진행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의 교과서 검증위 구성 제안 등을 일축하는 이유다.
김 대표는 전날 청와대 5자 회동을 계기로 역사전쟁에 나선 박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친박(친박근혜)계가 주축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도 26일 국정화 지지 모임을 연다. 공천 룰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봉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국정화에 반발하는 당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도권·비박(비박근혜)계 의원 중심이다. 이재오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역사가 권력의 입맛에 맞춰 기술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앞서 비주류인 정병국 정두언 김용태 의원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당내에선 반발 기류가 갈수록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수도권 의원은 “수도권은 몇천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데 국정화 이슈는 20∼40대 표심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상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참모들은 박 대통령이 과거 한나라당 대표 시절 사학법 투쟁에 나선 결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박 대통령은 27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도 국정화의 필요성을 역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총선을 지휘해야 하는 김 대표의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표가 이날 기술 이전 늑장보고 논란에 휩싸인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에 대해 “그 문제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좀 많이 있다. 책임 질 사람은 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눈길을 끈다. 여론이 나쁜 만큼 청와대를 향해 KFX 사업에 대한 인책론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여야가 역사전쟁을 끝내고 민생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수는 여론의 추이다. 국정화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조성되지 않으면 여권 내부의 파열음은 갈수록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 저지투쟁 하지만 뾰족수 못찾는 문재인 ▼
“반대해도 확정고시 나면 국정화되는데…” 민생 제쳐두고 장외투쟁 나서기도 부담
“우리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해도 확정고시(11월 5일)가 나면 그것으로 국정화가 결정된다. 이제는 국민이 논의하는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3일 대구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지역 역사학자들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앞서 부산에선 새누리당 소속인 서병수 부산시장과 예산정책협의회를 열고 “부산 시민의 삶을 챙기는 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표가 ‘국정화 저지 투쟁’과 ‘민생 살리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 준다. 문 대표는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국면에서 대여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국정화 반대 이슈는 야권 지지층을 결집하는 ‘호재’다. 신당 문제로 껄끄러웠던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손을 맞잡을 정도다.
하지만 민생 프레임이 변수다. 당 차원에서 민생 살리기에 나선다고 하지만 국정화 반대 투쟁에만 매달릴 경우 민생을 외면하는 정당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표가 5자 회동이 끝나자마자 국회 보이콧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내 지도부는 현 상태에서 여야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간 ‘3+3 회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극한 대치 상황은 피하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정국 파탄으로 가는 ‘치킨게임’까지 감수하겠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강공 드라이브로 ‘진흙탕 싸움’으로 흘러갈 경우 비난의 화살은 여야 모두를 향하게 마련이다. 원내 지도부가 우려하는 국면이다.
당 지도부가 대여 투쟁의 성과물을 얻어 내야 하는 점도 부담스럽다. 문 대표가 말한 대로 정부의 국정화 확정 고시를 막을 방법도 여의치 않다. 내년도 예산안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2월 2일 자동 상정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성과가 없을 경우 “지도부는 뭐 했느냐”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당 지도부는 여론전에 승부를 거는 모양새다. 여론전을 유리하게 끌면서 내년 총선 정국에 연결시킨다는 전략이다. 그래서 당이 앞장서거나 과격한 모습은 자제한다는 복안이다.
새정치연합은 2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국정화 말고, 국정을 부탁해’ 문화제를 개최한다. 당 관계자는 “문화예술인 중심의 문화제일 뿐 국회 일정과 연계하는 장외 투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투쟁과 민생 사이에 끼인 야당의 고민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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