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박근혜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놓고 여야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날카롭게 대치 중인 ‘역사전쟁’의 상흔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하지는 않았다. 다만 본회의장에서 노트북 커버에 ‘민생 우선’ ‘국정 교과서 반대’가 적힌 종이를 붙이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일부 의원들은 한국사 교과서를 한 권씩 들고 들어오기도 했다. 본회의에 불참한 정의당 의원 전원은 본회의장 앞에서 ‘대통령님 國史(국사)보다 國事(국사)입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박 대통령을 맞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개의를 미뤄가며 새누리당 원유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장 말을 안 들을 거면 왜 들어왔냐”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조경태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니터 뒷면에 종이를 붙인 채 시정연설을 들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예정보다 15분 늦은 오전 10시 15분에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전원 기립박수로 박 대통령을 맞았다.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대부분 일어섰으나 박수는 치지 않았다.
시정연설을 한 42분 동안 새누리당 의원들은 54번 박수를 쳤다. 지난해 시정연설(27번)의 두 배였다.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는 가장 뒷자리에서 기다리다가 박 대통령을 본회의장 밖으로 배웅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 꼭 이것(역사 교과서 국정화)을 성공시키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조경태 의원은 일어서서 박수로써 박 대통령을 배웅했다.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떠날 때 문재인 대표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했던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의원, 3군 사령관 출신의 백군기 의원 등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야의 신경전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본회의 직전에 박 대통령과 정 의장 등 5부 요인, 여야 지도부가 참석한 비공개 환담에서 박 대통령은 주로 방미 성과를 꺼냈다. 문재인 대표는 “교육부가 별도의 (국정화)비밀팀을 운영한다는 것도 드러났고, 게다가 그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간 것을 거꾸로 감금했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우리 당 의원들은 상당히 격앙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박 대통령이 배석한 황교안 국무총리를 향해 “내용을 좀 알아보십시오”라고 말했다고 야당 측 인사들이 전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는 “잘못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저녁 최형두 국회 대변인은 녹취록을 토대로 “박 대통령은 ‘교육부에서 확실한 내용을 밝힌다고 들었는데요. 자세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날 보수단체 회원 80여 명의 시정연설 참관도 논란이 됐다. 새정치연합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을 탈취했던 극우인사를 비롯해 국민행동본부 등 보수우익단체 회원 80여 명이 청와대의 초청으로 시정연설을 참관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경호상 신원 확인만 해준 것이지 청와대가 초청한 것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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