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핵심 인사들의 일련의 ‘개헌’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당 복귀가 임박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한 방송국 행사에서, 당 사무총장을 지낸 홍문종 의원은 1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개헌의 운을 뗐다. 방향은 외치(外治)와 내치를 분리하는 분권형 개헌이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 봇물론’ 발언이 나왔을 때 친박은 김 대표를 융단폭격했다. 당시 홍문종 의원은 “민생 경제를 살려야 하는 이 시점에 개헌론이 나라와 여당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몰아붙였다. ‘경제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며 청와대까지 가세한 파상 공세에 김 대표는 하루 만에 공개 사과했고 리더십에도 흠집이 났다. 외부 여건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1년 만에 친박은 김 대표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친박의 개헌론에 불편한 듯 “나는 개헌 이야기 안 한다”고 입을 닫았다.
여권 주변에서는 올해 중반부터 친박계가 박 대통령 임기 말 개헌을 추진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 맡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대통령-친박 총리’ 체제로 ‘친박 정권’의 장기 집권을 구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친박계에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점도 소문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의 반응은 냉담하다. 민생과 경제 살리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 개헌론이 불거질 경우 국정 운영에 장애가 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박 대통령은 2009년 “(분권형 대통령제를 시행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며 강하게 반대한 적이 있다.
개헌 논의에 대해 친박 내부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지금이 개헌을 얘기할 때냐. 전혀 잘못된 방향”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대통령정무특보를 지낸 김재원 의원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개헌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반대했다.
비박(비박근혜)계에서는 친박계 일각의 개헌 주장이 김무성 대표에게서 공천권을 확보하려는 ‘압박 카드’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 지형을 흔들어 언제든 김 대표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일종의 ‘무력시위’ 아니냐는 것. TK(대구 경북) 물갈이론에 이어 ‘박근혜 사람들’ 공천을 요구한 뒤 김 대표가 거부하면 내년 초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밀어붙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친박계는 “터무니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한다. 한 친박계 핵심 인사는 “친박의 장기 집권이니 공천권 요구니 하는 말들은 모두 친박을 해코지하려는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이 인사는 “다만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개헌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모든 걸 선거와 권력의 문제로 보면 아무것도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있는 2017년이 되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만든 ‘1987년 체제’가 30년을 맞는다는 점에서 내년 4월 총선 이후를 개헌 논의의 적기로 보는 사람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친박세력의 장기 집권 야욕”이라고 반발했다. 문재인 대표는 “개헌하고 싶으면 정정당당하게 총선 공약으로 제시하라”고 날을 세웠다. 이명박 정부 당시 친이(친이명박)계 주도의 개헌론도 ‘박근혜 죽이기’라는 친박계의 반발로 좌절됐다. 개헌 방정식에서 짚어야 할 변수는 너무 많다. 그만큼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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