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타협보다 끼워넣기… 못된 것만 닮아가는 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6일 03시 00분


이재명·정치부
이재명·정치부
19대 국회가 대한민국 정치사에 또 하나의 ‘흑역사’를 남겼다.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선거구 협상을 위해 사흘이나 머리를 맞댔다. 10일부터 12일까지 실제 협상 시간만 7시간 30분이었다. 그러고도 ‘빈손’이었다. 남긴 게 있다면 서로를 향한 삿대질과 비아냥거림뿐이다. 역대 국회에서 당 대표 담판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 적이 있나 싶다.

김 대표는 13일 비공개 회의에서 “문 대표가 초선 의원으로 정치 경험이 없어 협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주요 당직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협상력은 얼마나 대단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김 대표는 야당이 비례대표를 줄이는 대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자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동의해주면 검토해 보겠다”고 역제안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수용하기로 했지만 새누리당 최고위원들이 김 대표의 제안을 거부하자 바로 ‘없던 일’이 됐다.

협상 내용과 무관한 사안을 ‘끼워 넣는’ 것은 야당의 ‘주특기’였다. 자신의 제안을 손쉽게 뒤집는 것 또한 그동안 야당이 신뢰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당이 ‘끼워 넣기’를 시도하다가 스스로 제안을 뒤집었다.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한 며느리가 더하다더니 딱 그 짝이다.

야당은 여야 협상이 벽에 막힐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을 지목한다. 새누리당이 ‘청와대 오더’에 갇혀 경직돼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스스로 돌아보라. 의원 정수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일 수 없다면서 호남의 지역구 축소도 수용할 수 없다니 이런 경직된 협상이 어디 있는가. 요즘 문 대표는 호남 지지율 추락에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여당이 ‘유승민 트라우마’로 협상의 유연함을 잃었다면 야당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에 사로잡혀 자기모순을 보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야가 서로 남 탓 공방을 하는 사이에 자신이 출마할 지역구조차 불안정한 정치 신인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현역 기득권의 높은 벽만 실감할 뿐이다. 양보와 타협과는 담을 쌓은 것 같은 초선 야당 대표와 5선 여당 대표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재명·정치부 egija@donga.com
#국회#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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