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WFP 식량 포대와 김정은의 미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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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어린이식료품공장을 현지 지도한 김정은이 흰 가운을 걸친 채 두 손을 양 옆구리에 대고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웃는 모습을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그는 세계식량계획(WFP) 마크가 찍힌 포대에 곡물을 담는 듯한 설비 앞에 서 있었다. WFP가 북한 어린이들에게 지원한 식량인지, 포대만 재활용한 것인지 북 매체의 16일 보도만 봐서는 알 길이 없다. 북한은 지도자가 들어가는 사진과 영상은 꼼꼼히 검열하고 심지어 조작까지도 하는 나라인지라 이러한 장면을 공개한 의도가 궁금하다.

▷2000년 10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평양 낙랑구 정백2 유치원을 찾았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어린이들 앞엔 ‘USA wheat’라고 쓰인 밀가루 포대가 쌓여 있었다. 미국의 구호물품을 놓고 아이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이를 따라 한 올브라이트는 “나는 북한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 국무장관이자 어린이들과 율동을 함께 한 최초의 장관”이라며 활짝 웃었다. 현장 취재를 하던 나는 과거 미국 원조물품을 받고 비슷한 감사 공연을 했을 남쪽 세대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했다.

▷WFP가 북의 어린이와 임산부를 위해 2013년 7월부터 국제사회에서 모금한 영양지원사업 금액이 8890만 달러로 목표액 1억6780만 달러의 약 53%에 그쳤다. 올해엔 러시아가 600만 달러로 가장 많이 지원했고 스위스(593만 달러), 호주(230만 달러), 한국(200만 달러), 캐나다(160만 달러), 중국(100만 달러) 순으로 냈지만 북을 돕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북에 선뜻 지갑을 열고 싶은 나라가 많겠는가.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북한의 식량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평양에서 거리가 먼 변방일수록 식량난이 여전한 모양이다. 만성 영양부족에 찌든 북녘 어린이들은 통일 후 대한민국 국민이 될 미래세대다. 북한은 우리의 계속되는 인도적 대북지원 의사 표명도 계속 외면했다. 김정은의 살찐 모습에 바짝 마른 북한 어린이들이 오버랩된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wfp#식량포대#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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