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다녀온 다음 날인 어제 국무회의에서 작심한 듯 국회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경제 활성화 관련 4개 법안과 한-중국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가로막고 있는 야당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립서비스로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며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표현이 과격하지만 맞는 말이다. 제 할 일 않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심사도 편치 않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22일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에 때맞춰 정쟁(政爭) 중단을 선언해 당분간 여야가 화해와 협력의 정치를 해나갈 것으로 국민은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하루도 못 가 물거품이 됐다. 여야는 서로 YS의 정치역정(歷程)을 제 논에 물 대듯 유리하게 이용했다. 여당은 의회주의 정신에 맞춰 “개혁 법안 통과에 협조하라”고 야당을 압박했고, 야당은 “독재를 찬양하면서도,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는 것은 이율배반의 정치”라고 여당을 힐난했다. 국가와 민생, 개혁을 위해 절실한 법안 처리를 제쳐 놓고 치졸한 말싸움이나 할 때인가 묻고 싶다.
여야는 어제도 노동개혁 법안을 놓고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충돌한 것을 비롯해 각종 법안 처리와 예산 심사를 놓고 파행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한중 FTA 비준동의안 처리다. 한중 FTA가 연내 발효되면 발효일에 올해 1년차 관세가 인하되고 내년 1월 1일부터 곧바로 2년차 관세가 인하되기 때문에 1년 치 관세 인하의 혜택을 덤으로 보게 된다. 한중 FTA로 관세가 철폐되면 연간 54억4000만 달러의 관세 비용이 절감된다고 하지만 당장 연내 발효가 무산되면 1년 치 관세 인하의 혜택이 날아간다. 국회에서 비준안이 처리돼도 실제 발효까지는 준비할 것이 많아 26일이 사실상 국회 통과의 데드라인이다. 중국 뉴질랜드 베트남은 이미 국내 비준 절차를 마친 뒤 한국의 비준 처리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26일 YS 국가장(國家葬)을 치른다. YS는 민주화 투쟁 중에도 결코 국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의회주의자 YS의 유지(遺志)를 여야가 진정 계승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이날 한중 FTA 비준안이라도 처리하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도 ‘통합과 화합’이다. 야당은 피해대책 마련이 먼저라며 한중 FTA를 가로막고 있지만 통과 후 대책을 마련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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