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국무회의는 당초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겠다”고 밝혀 대통령 주재로 전날 저녁에 급히 바뀌었다. 박 대통령은 7박 10일간의 해외 순방 강행군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13분간 발언했다. 그만큼 국내 현안을 직접 챙겨야겠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오늘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긴급히 소집한 이유는 이번 순방 직전과 도중에 파리와 말리 등에서 발생한 연이은 테러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고, 이에 어느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급박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우선 구속영장이 발부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직접 거명했다. “민노총 위원장이 시위 현장에 나타나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폭력 집회를 주도했고,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합진보당의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불법 폭력 집회 종료 후에도 수배 중인 민노총 위원장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종교단체에 은신한 채 2차 불법 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노총의 다음 달 5일 2차 시위를 앞두고 한 위원장의 신속한 검거를 촉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이번에야말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도 했다.
불법 폭력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복면시위 금지법 제정을 지시했다. “테러 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올 수 있다. 복면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슬람국가(IS)도 지금 그렇게(복면 쓰고) 하고 있지 않느냐.”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속담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테러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며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휴대전화 감청이 가능하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을 비롯해 ‘테러방지법’, 사이버테러방지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정작 사고가 터지면 정부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극심하다”며 “부디 14년간 지연돼 온 테러 관련 입법이 이번에는 통과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란다”고 국회를 압박했다.
주요 법안 처리에 손을 놓고 있는 국회를 향해 ‘직무유기’ ‘국민에 대한 도전’ 등 신랄한 표현이 쏟아졌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법안 처리에 제동을 걸고 있는 야당을 정조준했지만 여당 지도부도 법안 처리에 적극 나서라는 주문으로 보인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개혁 법안 처리 지연으로 국가적 위기가 왔을 때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 해외순방 강행군에… 朴대통령 건강 ‘빨간불’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무회의장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동안 잠깐 숨을 몰아쉬었다. 이어 모두발언을 시작하려는 순간 기침이 나왔고 “많은 일정을 짧은 기간에 소화해 내느라 건강과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인사들은 “박 대통령이 7박 10일간의 해외 순방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테러 대비 강화를 강조하는 대목에선 잠시 말을 끊은 채 상체를 앞으로 숙였고, 말하는 도중 콧물도 훌쩍거렸다.
해외 순방 마지막 날 강행군 일정이 치명타였다고 한다. 22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길어졌고, 바로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이어졌다. 시간이 없어 점심 식사는 건너뛰어야 했다. 밤새 비행기에서 선잠을 잔 뒤 다음 날 새벽 서울에 도착했고 그날 오후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을 다녀왔다. 청와대는 당분간 대통령 일정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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