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통이 돌아가셨을 때는 복수하겠다는 말이 많이 보였고, DJ가 돌아가셨을 때는 여기저기서 애통한 소리가 나왔는데, YS가 돌아가시니 그분 생전의 개그 일화와 유머들, 심지어 그분이 나온 무협지 게임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치가의 죽음으로는 이게 좋다.”
@heyj****는 역대 대통령의 서거 풍경을 트위터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짧은 글에 따른 지나친 단순화라고 할 수 있지만 각각의 캐릭터를 잘 드러낸 글로 1500여 회의 리트윗을 기록했다.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범한 멘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회자됐다. “세상이 변해도 YS가 대한민국이 낳은 멘털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라는 내용의 트윗은 8000회 가까이 퍼져 나가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26일 파란만장한 생애를 뒤로하고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고인은 초등학교 때 꾸었다는 대통령 꿈을 기나긴 민주화 투쟁과 3당 합당 등 강렬한 행동과 특유의 정치적 돌파력으로 이뤄낸 큰 정치인이었다. 추모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울려 퍼진 노래는 가곡 ‘청산에 살리라’였다. 고인은 특히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리라’라는 구절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22일부터 26일 오전까지 트위터,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한 글은 모두 12만8948건이 검색됐다. 작고한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16만 명 이상이 조문을 다녀간 사실에 비춰 볼 때 소셜미디어 언급량은 그리 폭발적이지 않았다고 분석할 수 있다. 참고로 트위터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5일간 언급량(8월 18∼22일)은 5만3502건이었다. 트위터는 단 한 건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블로그 글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이 보관하고 있는 단 한 건의 트윗은 2009년 8월 18일 오후 9시경 @ysku****가 올린 것인데 여전히 시사적이다. “최근 ‘만들어진 현실’을 쓴 박상훈 박사의 발언이 경청할 만하네요.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과도하게 기념되는 것은 민주주의에 치명적이다. 정치권도 언론도 누가 더 DJ를 세게 기념하는 것을 경쟁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도 YS의 정치적 유산을 둘러싼 이른바 ‘상주 논란’이 뜨거웠다. @only****는 “김영삼: 5·16은 분명한 쿠데타, 역사를 후퇴시킨 쿠데타, 김무성: 5·16혁명,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 뒤집어, 김무성: 나는 YS의 정치적 아들, 김현철 끌어안고 오열 __;;;;”이란 글을 올려 1200여 회의 리트윗을 기록했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도 트위터에 “과거 김영삼을 따르다가 지금은 박정희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상주 노릇 하겠다고 나섭니다. 양심이나 의리 따위는 모르는 한국 정치에서나 가능한 저질 코미디입니다”라고 질타해 1200여 회의 호응을 얻었다. 한 누리꾼은 김무성 대표를 두고 “두산 야구잠바를 입고 진성 엘지팬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김영삼과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위는 예상대로 김대중이었다. 정치적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둘의 관계는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정도로 치열했다. @jeon****은 “김영삼이 단식투쟁 때 대보름빵 먹다가 문익환 목사한테 딱 걸린 이벤트 같은 거, 그거 김대중이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김영삼이 그랬다니까 다들 한바탕 웃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굉장한 캐릭터”라고 추모했다. 또 대통령을 개그 소재로 삼아도 됐던 첫 대통령으로 추모하는 이들도 많았다.
전체 연관어 2∼5위는 김무성, 빈소, 박정희, 김현철이 차지했다. 조문정치와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김현철 씨의 과거 트윗이 다시 퍼지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6위엔 짧은 조문과 영결식 참석 여부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박 대통령이 올랐고, 7위부터 10위까지는 민주화, 정치, 전두환, 영결식이 차지했다.
고인의 수많은 명언 가운데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가 가장 많이 회자됐고 업적으로는 금융실명제, 하나회 해체가 두 손가락에 꼽혔다.
공과를 논하기에 가장 적합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눈에 띄었다. 그만큼 인간적인 대통령이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뒤흔든 정치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하지만 그가 강조했던 대도무문의 곧은 정치는 지금 남아 있는 우리가 여전히 깊이 새겨야 할 소중한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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