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60)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원장만큼 핵심 요직을 섭렵하면서 국정을 이끌어본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장관(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대통령수석비서관(정무, 국정기획)으로 일했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다. 관료 출신(행정고시 23회)이면서 미국 하버드대 박사(정책학)다.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로 일했다.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들어왔다. 계보 정치에 발 담근 적 없는 정책가다. 경남 마산 출신. 1955년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월호부터 달려온 ‘국가미래전략을 묻는다’의 마지막 순서로 11월 9일 박재완 원장을 만났다.
- 관료를 지냈고, 학자면서 국정 운영에도 깊숙이 참여했습니다. 또 정치권, 싱크탱크 등 다양한 공적 활동을 했습니다. 건국 이후 역사적 맥락에서 대한민국이 가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압축성장을 통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나라로 자리매김했고요. 산업화, 민주화를 이룩한 자랑스러운 건국 이후의 역사를 가졌지만 남북 분단에 따른 어려움이 지속됩니다. 통일이 가장 큰 숙제라고 하겠습니다. 압축 산업화와 압축 민주화에서 비롯한 적폐도 있고요. 제도가 아직까지 성숙하지 못했기에 민주화, 산업화가 충분히 뿌리내리진 않았다고 봅니다. 산업화, 민주화를 더 고도화해야 한다고 할까요. 성숙한 단계로 진입해 선진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것도 통일 못지않은 과제입니다.”
“100% 부인할 정책 드물어”
- 청와대에서 정무수석비서관과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하면서 이명박(MB) 정부의 청사진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초기 전략과 관련해 무엇이 중요하다고 봅니까. 청와대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도 궁금합니다.
“거시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1987년 체제의 핵심은 5년 단임 대통령제라고 하겠습니다. 거의 30년이 다 됐잖습니까. 집권 정당의 교체가 두 차례나 있었고, 정권 교체는 더 많았는데 정책의 일관성, 연속성 면에서 상당한 흠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5년 단임이다 보니 대통령 자신도 백년대계를 도모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시계(視界)가 5년으로 불가피하게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익을 위해 멀리 보고 꼭 해야 할 정책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고,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에 무게중심이 가는 측면이 있어요. 중장기 전략과 관련해 우리가 상당히 취약해 국가적으로 손실이 생기는 체제를 가졌다고 하겠습니다.
전임 정권이 한 일을 이어받아 발전시킬 것은 발전시켜 승화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겠지만 100% 전면 부인할 정책은 별로 없습니다. 대북관계 같은 특별한 영역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헌법 가치를 훼손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임 정부의 정책에서 문제점이 있으면 미세 조정하거나 상당 폭 수정할 수도 있지만 존중이라고 할까요, 기본 맥락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한계를 드러냅니다. 장기적 시계에서 국가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일을 잘하면 최소 10년은 하는 시스템으로 갈 수는 없는지, 개헌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본은 예외지만, 의원내각책임제를 하는 나라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정권이 이어집니다. 영국도 그렇고, 이번에 캐나다도 10년 만에 바뀐 거예요. 독일은 메르켈 총리가 4선을 바라보고요.
대통령에겐 국민 통합과 관련해 반대 의견이라든지 껄끄러운 목소리도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국회선진화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날치기, 단상 점거 같은 구태를 되풀이할 순 없잖아요. 택일을 강요하는 이분법, 대립과 갈등의 정치 탓에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많이 작동하는 게 한국 정치의 현실입니다. 한발 양보하더라도 협조하는 분위기로 성숙해야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의 긴밀한 협력을 토대로 국정이 나아가야 해요.”
“외국에서 의아하게 여겨”
-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범(汎)보수 정권이라고 하겠는데, 정권이 바뀐 후 전 정부가 한 일의 상당 부분을 부정해버리는 면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도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보였어요.
“박근혜 정부가 그랬다는 게 아니고, 대부분의 정부가 다 그렇게 해왔다는 걸 말씀드린 겁니다. 전임자와 차별화하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해 그런 폐해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수시로 장관이 바뀌면서 그런 폐해가 더 두드러집니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때는 장관의 임기가 무척 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10년씩 한 분도 있지요. 대통령비서실장도 수년씩 했고요. 대통령이 바뀌고도 일을 계속한 분도 있습니다. 공기업 사장, 청와대 수석도 오랜 기간 일한 사람이 많고요. 1987년 이후에는 장관이고 수석이고 공기업 사장이고, 다들 임기가 너무 짧습니다. 같은 정부 내에서도 연속성이 없는 사례가 많아요. 5년 단임제가 유지된다면 원칙적으로 장관 임기는 대통령과 함께 가야 합니다. 총리도 마찬가지고요. 대신 일 잘할 사람을 뽑아야겠지요.”
- MB 정부 정책 중 이번 정부에 연계가 안 돼 아쉬운 것은.
“많죠. 녹색성장? 요즘 ‘녹색’이란 말 자체가 안 나오는데요, 뭐. 건국 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주도해 글로벌 어젠다로 채택된 겁니다. GGGI(글로벌녹색성장기구)는 우리가 주도해 만든 국제기구고요. 녹색성장이 유엔에서 공식으로 쓰는 용어가 됐습니다. 현 정부가 그 정책을 계승하면 좋겠습니다. 외국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7대 미래산업이라고 발표한 것에 녹색산업이 들어가 있어요. 중국에서도 녹색성장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씁니다. 4대강 살리기 같은 것도 물이 연결돼 있기에 지류, 지천 등에서 후속 사업을 해야 합니다. UNEP(유엔환경계획) 같은 곳에서는 4대강 살리기를 아주 잘된 사업으로 봅니다. 우리만….”
- UNEP가 그렇게 평가한 구체적 자료가 있습니까.
“보고서도 나왔습니다. 보도도 많이 됐고요. 아힘 슈타이너 사무총장이 와서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물 관리 기술을 태국에 수출하면 좋았을 텐데, 6조 원대 프로젝트가 다 됐다가 무산됐습니다. 태국 총리가 바뀐 데다 한국 정부가 교체된 후 감사원이 4대강 살리기를 비판하는 상황에서 그쪽도 명분이 서지 않는 거죠.”
재정 목 조르는 총선, 대선
-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일했습니다. 최근의 노사정 타협안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사회·경제·복지 전반에 걸친 포괄적 타협안인데, 내용이 추상적인 선에 머물렀습니다. 아주 많은 걸 담았으나 일종의 맛보기 수준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핵심 내용은 추후에 협의하기로 한 것이 많아요. 각론에 들어가면 상당한 이견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법제화하거나 정책, 예산에 반영할 때 진통이 예상됩니다. 양측이 오래전부터 하고자 한 숙원사업을 합의안에 끼워 넣은 것도 있더군요. 대타협의 본질과 상관없는 것이 구석에 들어갔습니다. 학자로서, 첫째 뭘 하고 둘째 뭘 하고 하며 일필휘지로 내려간 합의문을 기대하는 건 너무나 이상적이고 탁상공론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한계를 지적한 것은 탁상공론 관점에서 말씀드린 것이고요. 한국노총이라도 참여케 해 참으로 고생해서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차차선 정도는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2011년 6월부터 2013년 3월 정권 이양 시까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국가 재정을 담당했습니다. 내년, 내후년에 총선, 대선이 있습니다. 총선과 대선이 국가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총선이나 대선 같은 주요 정치 일정이 있으면 교과서에 나와 있듯 정치인은 선심성 지출을 늘리려 하는 유혹을 받게 되고요. 정당도 그런 요구를 담아 공약으로 제시합니다. 자연히 재정이 팽창하는 계기가 되기 쉽죠. 반면 조세 수입과 관련해서는 세금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기에 대차대조표가 맞지 않는 거죠. 재정수지는 악화되고 나라 빚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죠.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 세계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 부작용을 막아야겠군요.
“박근혜 대통령도 말씀한 적이 있는데, 페이고(Pay-Go)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의무지출로 정책 추진 때 재원 확보를 위한 대책을 함께 검토하도록 하는 정부재정 건전화 방안의 하나인데요. 예컨대 정부가 기초연금을 늘리겠다는 정책만 올리면 국회의원들이 다 찬성할 수 있지만, 연간 1조 원이 소요되는데 무상급식을 깎아서, 국방비를 삭감해서, 빚을 내서 하겠다는 식의 재원 조달 방법을 함께 제출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세금을 올려 충당하겠다 해도 마찬가지고요.”
하룻밤 새 만드는 공약
-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재정 부담을 수반하는 법률안은 국회예결위 협의를 의무화한다든지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현재는 상임위에서 예산 예비심사를 먼저 하고 그걸 모아 예결특위에서 본심사를 하는데, 미국처럼 예결특위에서 먼저 본심사를 해 분야별 할당 금액을 정하고, 그것을 각 상임위에 줘 상임위가 그 범위에서 예산을 항목별로 채우는 방식을 도입해도 무분별한 예산 팽창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장관 재직 때 추진하다 결국 법제화에 이르진 못했지만, 대선후보가 핵심 공약을 선관위에 제출하고 선관위가 소요 예산을 검증해 공표하는 방식을 도입하려 했습니다. 선관위가 전문가 풀을 만들어 A후보는 이런 공약을 냈는데 이건 돈이 얼마 들어간다, B후보는 다른 공약을 냈는데 돈이 얼마 들어간다고 선거 공고에 실어 유권자에게 알려주는 제도죠. 하룻밤 새 무책임한 공약이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거든요.”
- MB 정부가 작은 정부, 효율적 정부를 내세웠지만 공공부문 개혁, 즉 정부, 산하기관, 공기업에 대한 개혁이 미흡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다만 작은 정부를 위한 기조가 확실했다는 점, 진정성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에 들어가 정부 조직 개편안을 마련할 때 역대 가장 슬림화된 내각을 꾸리려 했습니다. 부처 수를 굉장히 적게 하려 했지만, 헌법상 제약 때문에 15개로 했습니다. 하드웨어나 조직적 통폐합은 많이 했죠. 새 정부 들어 해양수산부 등의 부처가 부활했지만 지난 정부 때는 국토해양부, 교육과학기술부 식으로 거대 부처로 다 갔습니다. 대부·대국·대과주의로 조직을 개편한 거죠. 공기업도 주택공사, 토지공사를 LH공사로 통합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산업은행 민영화가 안 됐고, 인천국제공항공사 운영권을 민간에 위탁하려는 문제 등도 안 됐습니다. 변명 같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수요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워낙 급했어요.”
“통일펀드? 적자부터 줄여야”
- 앞에서 “통일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라고 말씀했습니다. 통일비용과 관련한 논쟁이 적지 않습니다. 국가 재정을 다뤄본 전문가로서 통일비용 관련 국가 재정 계획은 어떠해야 한다고 봅니까.
“초기에는 천문학적 부담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실현될 편익이 있기에 그 편익을 담보로 한 다양한, 창의적 조달 방안을 마련해 감당해야 합니다. 독일의 전례를 보면, 서독과 동독의 경제 수준을 동등하게 만들기 위한 투자로 초기 13년간 GDP(국내총생산)의 5%씩 투입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부가가치세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GDP의 4%입니다. 단순히 말해 부가가치세 세율을 2배 넘게 올려야 GDP의 5%에 달하는 재원을 새로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독과 서독의 1인당 GDP 격차가 2.3배였습니다. 남북한은 21배거든요. GDP 전체 덩치로는 남한이 44배 큽니다. 서독보다 부담이 훨씬 크죠.
다만 북한은 일종의 그린벨트와 같아서 미개발 지대로부터 실현될 부가가치, 편익이 상당합니다. 부가가치, 편익을 담보로 해 국제금융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북한의 국유지 등을 베이스로 한 창의적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는 게 가능할 겁니다. 부담이 많든 적든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든 짊어져야죠.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와 미래 세대에 큰 도움이 되기에 현 세대가 부담을 짊어져야 합니다.
“통상·외교에 생존 달렸다”
혹자는 돈이 많이 드니 미리 펀드를 마련해놓자는 식으로 말합니다. 유비무환의 시각에선 고개를 끄덕일 측면이 있으나 경제 논리로만 본다면 한 은행에서 대출받아 다른 은행에 저축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재정이 적자가 납니다. 빚이 매년 는다는 뜻인데, 통일펀드를 만든다는 것은 돈을 또 꿔온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빌려오는 걸까요? 미래 세대에게서 꿔오는 겁니다. 적자 상태에서 저축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합리합니다. 통일비용 부담을 줄이려면 현재의 적자를 줄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중에 통일비용과 관련해 차입을 할 때 이자율을 낮출 수 있습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할까요.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합니다. 요컨대 통일비용은 부담은 좀 되지만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그러려면 알뜰하게 살림하면서 창의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타결 직후 중국 같은 나라가 세계 경제 질서를 세우게 할 순 없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서 확인되듯, 자유무역협정(FTA) 등은 경제협상 전략이면서 전체 국가전략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한중 FTA 협상이 타결되고 중국이 주도하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도 들어갔으나 TPP에는 아직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균형이 맞는 걸까요. 박근혜 정부의 경제외교 전략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우리가 국력이 많이 신장되고 경제 규모도 커졌으나 여전히 미국, 중국, 일본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작은 나라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정학적 위치나 고유 자원 등을 고려하면 외교와 통상이 엄청나게 중요한 나라예요. 모든 무기를 갖추고 병력을 충분히 유지해 자주국방을 하면 좋겠지만, 강대국 사이에서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고 그것을 통해 방위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에너지와 식량을 대외 수입에 의존합니다. 식량과 에너지를 사올 외화를 얻으려면 우리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보유 자원이 부족하기에 외부에서 자원을 들여와 거기에 지식과 노력을 얹어 부가가치를 창출해 다시 수출하는 형태입니다. 통상과 외교가 국가 생존의 필수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늦기는 했지만 TPP 가입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TPP에 가입한 나라 대부분과 양자 FTA가 체결돼 있어 상대적으로 TPP의 필요성이 부각되지 않을지 몰라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TPP로 인해 일본에 대한 우리의 상대적 우위가 잠식당하기에 가입 필요성이 절실합니다.”
-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불가능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스테레오 타이핑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획일적으로 구분하면 그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두 강대국과 긴밀한 유대·협력 관계를 갖는 것이 좋고, 미국과 중국이 윈-윈 효과를 내도록 돕는 게 갈등과 대립이 생기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양쪽이 최대한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쪽으로 가게끔 하는 게 좋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韓美는 가치동맹”
-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
“전 세계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려 노력하는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통상 협정, 즉 미국이 추진하는 TPP와 중국이 주도하는 알셉(RCEP,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TPP의 개방도, 자유화 수준이 높습니다. 중국이 추진하는 알셉은 아주 낮은 수준이에요. 한중 FTA도 그렇고요. 한미 FTA에 비해서는 아주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거든요.
우리는 매우 적극적으로 통상 장려 및 촉진, 개방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훨씬 더 앞서 있습니다. 중국은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도 아니거든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존중하느냐가 OECD의 가입 요건이잖습니까. 원론적으로 양자와 잘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힘을 벗어나는 범위의 영역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그때는 미국 쪽에 스크럼을 짜야 합니다.”
- 우리 경제의 대(對)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됩니다. 수출에서는 25%를 넘어섰고, 한중 무역 규모가 한미·한일 무역을 합한 것보다 큽니다. 일본은 2009년 12월 오자와 이치로 당시 집권 민주당 간사장이 140여 명의 의원 및 경제사절단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일관계가 정점을 찍었다가 이듬해 희토류 분쟁 등이 발생한 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운용했습니다. 인도, 아세안 등과의 협력을 대폭 확대해 리밸런싱(rebalancing)에 나선 거죠.
“한국이 수출 다변화와 제3국 진출에서 상당한 결실을 본 상황이라는 점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시 일본이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 등에 구애 작전을 했습니다. 미일관계가 어색해지면서 한미가 밀월관계라고 할 만큼 가까워졌죠. 일본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해 미국 쪽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반대로 요즘은 우리가 중국과 가까운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워싱턴 정가에서 드러낸다더군요. 제가 만난 몇 사람도 그런 시각을 가졌어요. 이른바 ‘중국 경사론’이죠. 통상으로 먹고사는 나라이니 가리지 않고 다 잘 지내야 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면 우리는 가치동맹으로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존중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 일본처럼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된 부분을 인도나 아세안 쪽으로 리밸런싱하는 게 가능할까요.
“동남아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세안이 요즘 전반적으로 아주 어렵습니다. 위기설도 심심찮게 거론됩니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
- 한나라당 의원 시절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습니다. 국가 경영 차원에서 볼 때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과거의 인물 중심 정당 구조는 어느 정도 희석되고 제도와 정책 중심으로 옮아가는 추세이긴 합니다. 당리당략보다 국리민복이 앞서야 하는데, 당리당략이 좀 앞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승적으로 행동하고 백년대계와 국리민복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모습이 좀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의 충원 시스템이 개선되면 좋겠어요. 정치공학에 자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책 마케팅을 잘하는 분들이 여의도에 들어가 일하면 좋겠습니다. 개개인의 자질은 양호한데, 정치공학에 이끌리는 문화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 MB 정부에 대한 비판적 얘기가 많습니다. 공과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드릴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따로 정리한 자료를 드릴 수도 있고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했습니다.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고요. 글로벌 관점에서 국격의 상승과 국력 신장이 두드러졌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 이미지라든지 문화 등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나라의 힘이 커지고 국민도 자신감을 갖는 시기였다고 봐요.
발등의 불 끄는 게 급하다보니 구조 개혁을 당초 계획대로 해낼 여건이 좀 안 됐지만… 변명하기보다는 구조 개혁 노력이 전반적으로 미흡했다고 정리하겠습니다. 또한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던 터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이 많았고, 글로벌 경제위기였던 터라 서민의 체감 경제 사정이 어려웠습니다. 지표상으로 보면 성장률도 상당히 선방했고 분배 상태도 2010년부터 꾸준히 나아졌지만 국민은 격차가 심화했다고 느꼈을 겁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 사정을 개선하지 못한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싱크탱크 운동의 과제라면.
“불편부당해야 합니다. 싱크탱크가 한쪽 편을 들어 정치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상근 인력도 충분히 갖춰야 하고요. 소액 다수 기부자가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재원 걱정 없이 연구에 전념하고 성과를 내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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