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군대로 치면 전역이 임박한 말년 병장이다. 내년 예산안이 오늘 국회를 통과하면 경제팀 수장(首長)의 역할은 사실상 끝난다. 5일 해외 순방에서 귀국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달 중 개각을 단행하면 ‘3선 의원 최경환’으로 돌아가 총선 준비에 돌입할 것이다.
1963년 12월 도입된 한국의 경제부총리는 경제정책에서 실질적으로 국무총리 이상의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역대 부총리 명단을 살펴보면 한국 경제의 도약과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 적지 않다. 반면 존재감이 미미하거나 차라리 그 자리를 맡지 않는 게 나았을 사람들도 눈에 띈다. 외환위기 前夜 닮은 현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최경환 경제팀의 성적표를 B―나 C+ 정도로 평가했다. 글로벌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폐해가 극심한 현실에서 낙제점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합격점도 아니다. 일본이 아베노믹스의 거품 효과가 꺼지면서 2분기와 3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반면 3분기 한국은 전 분기 대비 1.2% 반짝 성장해 6개 분기 만에 0%대를 탈출한 것이 퇴임을 앞둔 최 부총리에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지금 우리 경제는 기업과 가계 부문 모두 조짐이 심상찮다. 성장 동력이 위축된 기업들은 뼈를 깎는 긴축경영에 들어갔다. 막을 올린 연말 인사시즌에서 각광을 받는 승진 임원들의 뒤편에는 쓸쓸히 짐을 싸서 축 처진 어깨로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장기불황 여파로 소득은 늘지 않고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내년 총선, 2017년 대선이라는 정치 변수도 기다리고 있다.
각계 지식인 1000명은 최근 발표한 ‘지식인 선언’에서 현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 국면이며 외환위기 전야(前夜)인 1996년 말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엄중한 현실에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장관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은 위기관리 능력이다. 어떤 파도가 몰아쳐도 한국경제호(號)의 전복을 막을 수 있는 역량, 경험, 경륜이 필수적이다. 행정부 ‘한직 1급’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가 갑자기 발탁된 뒤 실패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같은 ‘파격 인사실험’을 할 여유가 없다.
객관적으로 능력이 검증된 인사라면 어느 정부에 몸담았든, 출신 지역과 학교가 어디든 가릴 일이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의 고위직들을 다시 쓰는 것은 연령을 감안할 때 한계가 있겠지만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공직자 가운데 역량과 국가관을 겸비한 인재들은 적극 끌어안아 ‘인선(人選)의 풀’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기관리 능력과 소신 갖춰야
새 경제부총리는 국회와 여론을 존중하되 한국이 가야 할 길을 뒤틀리게 만드는 잘못된 움직임에는 일시적으로 돌팔매를 맞더라도 “그건 아니오”라고 말하는 소신과 강단을 갖췄으면 한다. 올해 초 연말정산 파동 때 언론과 정치권이 사실과 다른 분석을 근거로 ‘직장인 세금 폭탄론’을 제기하자 최경환 경제팀은 화들짝 놀라 땜질대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근로소득자 면세자 비율이 32%에서 48%로 치솟은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의 아픈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다음 대선이 2년여 앞으로 다가온 점을 감안하면 ‘포스트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 정부 임기 말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 선택할 새로운 경제부총리 카드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어느 한 정권의 성패(成敗)를 넘어 우리 국민의 삶과 국가의 앞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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