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의 장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 대한민국 장관 평가’에서 상위권에 오른 장관들은 이런 3박자를 두루 갖춘 이들이었다. 적극적인 현장 행보를 통해 정책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한 박자 빠른 정책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장관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21명 중 1위를 차지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 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노동개혁이 국회의 벽에 부닥쳐 아직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끈기 있게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펼쳐온 이 장관에 대해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협상 상대방인 한국노총 간부들조차 “역대 노동부 장관 중에서 소통 능력과 성실성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평가할 정도다. 일-학습병행제 등 뚝심 있게 추진해온 직업교육정책도 중요한 성과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향후 산업구조와 인구구조의 변화를 반영해 직업교육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했다”고 말했다.
경제 분야 장관 중 최고점을 받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트레이드마크는 ‘발로 뛰는 규제 개혁’이다. 그는 취임 직후인 올해 4월부터 금융당국 내에 현장점검반을 가동했으며 10월 말까지 274개 금융회사를 방문하고 3087건의 건의를 받아 이 중 상당 부분을 실제 규제 개혁에 반영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계좌이동제 실시, 그림자 규제 근절 등을 잇달아 추진해 금융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7월 취임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재임 기간은 짧지만 우선순위에 따라 정책을 하나씩 차분하게 실천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조 브로커 근절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국고 손실 환수 송무팀을 출범시켜 담합업체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외교안보 분야 장관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전체 점수는 ‘보통’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지뢰 및 포격 도발로 최고조에 올랐던 남북 간 긴장을 8·25 남북 고위급 합의를 통해 대화 분위기로 전환시킨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후 사회 문화 종교 분야로 남북 민간 교류를 확대시키고, 차관급 남북 당국 회담을 개최하기로 북한과 합의하는 등 남북관계를 대결 일변도에서 대화 국면으로 빠르게 개선시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수출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자 선제적으로 내수 살리기에 나서 성장률 하락을 최소화한 점이 호평을 받았다. 특히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2분기(4∼6월)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자 최 부총리는 7월에 신속히 11조5639억여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일부에서도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최 부총리는 “경기를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며 국회를 설득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취임 초에 학자 출신(전 농촌경제연구원장)이라는 점 때문에 업무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현 정부 임기 내내 장관직을 맡을 것이란 의미에서 ‘오동필(5년 재임+이동필)’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이 장관은 귀농귀촌 활성화, 농업의 6차산업화(1차 농업×2차 제조업×3차 서비스업), 스마트팜 보급 등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 못한 장관 ‘탁상공론-복지부동’ ▼
황우여, 국정화 정국서 ‘총선 콩밭’ 생각 … 박인용, 신설된 안전처 밑그림 제시 못해 문형표, 메르스 정보 비공개 패착… 최성준, 단통법 보완 요구 귀닫아
소통과 발 빠른 정책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장관들과 달리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대국민 소통이 미흡했던 장관들은 낮은 평가를 받았다.
21명의 장관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었다. 이번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 대부분은 황 부총리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꼽았다. 국정화 자체에 대한 찬반 의견과 별개로 국정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황 부총리가 지나치게 청와대의 의중과 본인의 정치적 입장만을 생각해 ‘불통’으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경제 분야 장관 중 최하위를 차지한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동통신사 간의 경쟁을 막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문제점을 도외시한 점이 잘못한 일로 꼽혔다. 특히 정책 추진 과정에서 소통을 경시한 점이 도마에 올랐다. 단통법의 수정이나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방통위는 강력한 단속에만 힘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또 지상파 방송사로 광고 쏠림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광고총량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했는데도 방통위는 올해 초 이 제도의 도입을 강행했다. 이와 함께 경제성이 높아 ‘황금주파수’라 불리는 700MHz(메가헤르츠) 주파수를 관련 업계와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은 채 지상파 방송사에 배분하는 데 앞장선 점도 부정적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메르스 사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낮은 점수를 받은 경우다. 일각에선 신종 감염병인 만큼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동정론’도 나왔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이 사태 초기에 신속히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점은 패착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일 정상회담 성사, 한일 외교장관 상호 방문 등 대일 외교 진전이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관계 관리 미숙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탄생한 국민안전처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기대만큼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신설 부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조직 안정을 통해 혁신적인 정책 개발을 이끌어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다는 평가다. 김한창 행정부공무원노조 정책연구소장은 “정책 디자인 능력의 부재에서 오는 조정 능력의 상실이 리더십 부재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어떻게 평가했나 정책 성취도 참고해 전문가-기자 90명 설문 ▼
정부 부처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려면 해당 부처를 이끄는 장관이 그에 필요한 자질과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이런 이유로 동아일보는 ‘2015 대한민국 정책평가’와 연계해 각 부처 장관들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다. 17개 부, 3개 위원회, 1개 처 등 21개 부처의 장관이 평가 대상이다.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최근에 장관이 교체된 부처는 올해 가장 긴 기간 재임한 전임 장관을 평가했다.
경제, 외교안보, 교육사회복지 등 3개 분야에서 각 부처가 추진하는 정책, 장관들의 업무 추진 과정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온 분야별 전문가 20명씩 60명, 동아일보와 채널A에서 정부 부처를 담당하는 주요 부서 부차장과 논설위원 10명씩 30명 등 총 90명이 평가에 참여했다. 2015 정책평가에서 나타난 부처별 정책 성취도를 숙지한 뒤 설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평가가 이뤄졌으며 장관들의 업무 성과 평점은 100점 만점 기준으로 매겨졌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이번 평가 결과 공개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전문가 명단은 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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