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가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인 2일 밤 12시를 48분 넘겨 386조4000억 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여야는 어제 “정부 예산안 3000억 원을 줄여 민생 지원사업을 발굴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예산안 처리에 앞서 열렸던 여야 의총을 복기해보면 실상은 딴판이다. 내년 총선에서 표가 될 예산을 따내기 위해 평소 강조했던 민생예산이나 법안을 팽개친 국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제 오후 6시 30분부터 무려 4시간 동안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총에선 자신들이 요구한 호남·충청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6170억 원 가운데 1200억 원만 반영된 데에 격앙된 반응이 터져 나왔다. 30, 40대의 표심을 노린 영유아 보육예산, 노인 표심을 감안한 경로당 냉난방비 같은 예산이 늘었는데도 5선의 이미경 의원은 “반드시 챙겨야 할 굵직한 예산, 표가 될 예산을 챙겨야 하는데 경로당 난방비로 되겠느냐”며 “우리한테 표가 오지도 않고 하나도 고마워하지도 않는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누리과정 챙긴다고 표가 와장창 오는가”라는 말을 보면 평소 ‘누리예산 정부 부담’을 강조한 것은 대(對)정부 공격용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비슷한 시간 텃밭인 대구·경북 예산으로 5600억 원을 챙긴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는 종교인 과세법안을 놓고 총선에서 표를 잃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불리하지 않나”(김을동 의원) “서울과 수도권 목사님들이 기반을 만들어줘 그나마 근소한 차이로 이기는 것”(이재오 의원) 같은 불만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그래서 총선과 대선이 끝난 2018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생색내기용’임을 사실상 시인했다.
총선을 의식한 여야의 선심 경쟁으로 4000여 건의 쪽지 예산이 난무하면서 SOC 분야 4000억 원, 사회복지 분야 4732억 원이 늘었다. 이 때문에 경제 성장에 필요한 연구개발과 국방, 국민 안전을 위한 예산 등은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민생법안이 정치적 인질로 전락했다”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민생을 살리는 데 대단히 미흡한 예산”이라고 자신들의 책임은 없는 듯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핑계로 ‘법안 끼워 팔기’도 모자라 예산과 법안까지 바꿔 먹은 19대 의원들의 민낯을 이제 국민이 완전히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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