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희숙]좌파는 노동개혁 없는 살길 말해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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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법안 모두 국회 통과해도 핵심 의제 빠져 미흡한데
경제 살리기,청년 일자리 창출 대안 제시는 없이 반쪽개혁마저 반대하는 좌파
차라리 노사정 합의 집착 말고 미래지향적 개혁안 공론에 부쳐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게 낫다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올 한 해를 달구었던 노동개혁 이슈가 국회와 함께 저물고 있다. 문제가 뭐였는지 되돌아볼 때다. 가장 착잡한 것은 노동개혁 관련 논의의 수준이다. 지난 1년여 동안 막대한 정책역량이 투입된 부문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회와 두 노총을 중심으로 공개되는 발언은 이들의 인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감정적 선동으로 채워졌을 뿐 비전과 분석이 빈약하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주장은 거의 떼쓰는 것에 가까울 만큼 근거가 희박하다. 물론 노동개혁으로 비정규직이 줄어들지, 늘어날지, 얼마나 변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시도는 별 의미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구조와 앞서간 국가들의 개혁 사례를 참조하면 대략의 범위를 추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수백만 명의 정규직 근로자가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주장과 이런 예측 간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더 큰 문제는 주장에 담긴 고민의 깊이다. 공적인 담론은 단지 그 바닥에 깔린 마음이 따뜻한지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하고 있는지, 그 정도의 고민이 수반됐는지다.

이 때문에 근로조건 악화와 고용 안정성 파괴를 염려하며 노동개혁을 반대하는 주장들은 비록 그것이 선의에 기반을 뒀다 해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글로벌화한 경제 환경 속에서 어떻게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조화시킬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개혁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자체가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면, 노동개혁 없이도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나름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최대의 난제는 칼날 같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어떻게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들의 열패감을 치유할 것인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아는 바 없으며 관심도 없습니다’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비정규직 축소와 최저임금 인상 등 파편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의도적인 무책임이 아니라면 철저한 무능력과 낮은 눈높이일 것이다.

무책임이든 무능력이든 장기간의 답보 속에서 국회 회기가 끝나는 지금, 작금의 논의구조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제의 적절성 역시 살펴봐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현재 국회에 제출된 5개의 노동개혁 법안이 모두 통과된다 해도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건강하고 활력 있게 만들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해고 절차 개선이나 금전적 보상, 취업규칙 변경, 파업 중 대체노동 허용, 파견제 대폭 개선 등 영향력 있는 의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까지 남은 의제는 장기적으로 무의미하지는 않을지언정, 당장은 소극적이고 협소하다고밖에 평가되지 않는다.

그간 정책역량을 열정적으로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극적인 의제로 개혁안이 구성된 것은 노사정 합의 구도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노동시장 경직성의 최대 수혜자로 개혁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 중심 근로자 조직의 지분을 인정하면 할수록 개혁적 내용은 감퇴될 수밖에 없다.

물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속도 조절이란 의미를 여기에 담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회에서의 논의가 다시 원점에서 시작돼 노동개혁을 또 한 번 형해화(形骸化)한다면 애초에 개혁 의제의 축소와 약화 단계를 미리 거칠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미래 지향적이며 적극적인 개혁 내용을 펼쳐놓고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국민들을 직접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타인의 감춰진 사연과 동기를 존중하는 사적인 관계와 달리, 공적인 공간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공적 위치와 어울리지 않는 언사를 계속한다면 그가 가진 공적 영향력의 구조를 계속 유지시킬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국가적 견지에서 미래를 고민하고 그 나름의 대안을 내놓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세력이라면 굳이 공적인 담론에 지분을 인정받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2∼3%대 성장률이 일상화하면 고용 부족은 더 심화할 것이고 개혁은 더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기득권 세력의 눈치 보기를 그만하고 핵심적인 개혁 의제부터 다시 추려 보자.

윤희숙 객원논설위원 KDI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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